아름다운 절집, 미황사 대웅전 문화·유적

- 미황사 대웅전


백산맥이 한반도 서남쪽 해남 두륜산을 거쳐 최남단 땅끝을 향해 뻗어 내리다가 바다에 이르기 전에 한 번 힘껏 솟은 것이 달마산(489m)입니다.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진 그 모습이 기기묘묘해 남쪽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합니다. 이런 달마산 자락에 아름다운 절 미황사(美黃寺)가 있습니다.

미황사에는 다음과 같은 창건설화가 전합니다.

신라 경덕왕 8년(749년) 돌배(石船) 한 척이 사자포(땅끝마을) 앞바다에 나타났습니다. 며칠 동안 사람들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돌아서면 다가오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이에 의조(義照)화상이 제자들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하자 배가 육지에 닿았습니다. 배 안에는 금인(金人)이 노를 잡고 있었고, 금함(金函)과 검은 바위가 있었습니다. 금함 안에는 화엄경·법화경과 비로자나불·문수보살·보현보살 등이 들어 있었고, 검은 바위가 깨지면서 검은 소 한 마리가 튀어나왔습니다.

그날 밤 의조화상의 꿈에 금인이 나타나 "나는 우전국(인도)의 왕이다.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안치하면 국운과 불교가 크게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음날 의조화상이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달마산 중턱에서 한번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한참을 가다가 다시 넘어지더니 소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의조화상은 소가 처음 멈췄던 곳에 통교사(通敎寺)를 짓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세웠습니다. 절 이름을 소의 울음소리가 매우 아름다워서 '미' 자를 넣고, 금인의 빛깔에서 '황' 자를 따서 '미황사(美黃寺)'라 했습니다.
- 대웅전의 삼존불


미황사에서 대웅전은 좀 특별합니다.

여느 절처럼 앞마당에 있을 법한 석탑도 없고, 한때 화려했을 단청은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바래져 건물 목재는 맨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화장기가 없는 이런 순박한 모습이 오히려 정겹습니다. 배흘림기둥은 허옇게 바랬고, 속까지 튼 나뭇결에선 세월의 깊이가 느껴집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인 팔작지붕을 올린 다포집 형태의 대웅전 내에는 석가모니불을 가운데 두고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좌우로 모시고 있습니다.
- 대웅전 내부 천장


대웅전 천장 가득히 장식된 천불벽화와 범어 단청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범어 단청 곳곳에 그려진 부처님께 세 번 절을 올리면 소원 한 가지는 이루어진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 대웅전 주춧돌


대웅전 건물 기둥을 받친 거친 주춧돌에 새겨진 조각도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게를 비롯하여 자라와 같은 바닷속 동물들이 뭍에 올라와 대웅전 주춧돌에 머물고 있습니다. 미황사가 바닷가에 있는 절이라서 그렇게 한 것인지, 아니면 창건설화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지 아리송합니다.

- 미황사 대웅전


미황사는 한때 12개의 암자를 거느릴 만큼 큰 사찰로 번성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지금과 같이 쇠락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합니다.

약 150년 전쯤 미황사는 더 큰 중창불사를 일으키기 위해 힘을 쏟았습니다. 스님들은 짬이 날 때마다 해안 지방을 돌며 궁고로 시주를 모으곤 했습니다. 궁고란 해남지방에서 농악을 이르는 말로,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전투하기 전에 진을 짜고 사기를 높이던 군악과 군고(軍鼓)를 일컫습니다. 미황사 스님들은 이를 12채 가락으로 정리하여 남사당패처럼 여러 곳을 돌며 순회공연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꽹과리를 치며 궁고를 지휘하는 스님이 어여쁜 여인에게 유혹을 받는 꿈을 꾸었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스님은 주지 스님에게 달려가 이번 공연은 쉬어야 할 것 같다고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지 스님은 "내가 있고, 하늘이 알고 있는데, 무슨 필요가 있느냐?"라며 강행하라고 하였습니다. 스님들은 불길한 마음으로 궁고를 꾸려 완도, 청산도로 떠났습니다. 얼마 후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에 휩싸여 배는 침몰하고, 설장구를 맡은 스님 하나만 빼고 모두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남은 것은 절에 있던 나이 많은 스님 몇 분과 궁고를 꾸리느라 빌린 빚더미뿐이었습니다. 미황사는 그만 망해 버렸습니다.

지금도 청산도 사람들은 미황사 스님들이 빠져 죽은 그 바다에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날이면 궁고 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미황사 아래 서정리 마을 사람들도 비바람 몰아치는 을씨년스런 날씨를 '미황사 스님들 궁고 치듯 한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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