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보림사 삼층석탑과 석등 문화·유적

- 장흥 보림사 삼층석탑과 석등


9세기 통일신라시대는 정치 문화적으로 그 힘이 경주로부터 지방으로 이동하는 호족발흥의 시기였습니다. 또한, 사상적으로는 불교가 교종에서 선종으로 넘어가는 때였습니다. 이런 시대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구산선문의 등장입니다. 이런 영향으로 호족의 이미지를 닮은 철불이 등장하고, 대선사의 사리탑인 부도가 유행하였습니다.

장흥 보림사는 구산선문 가운데 가지산문의 종찰로, 구산선문 가운데서도
실상사에 이어 두 번째로 문을 연 곳입니다. 또한, 이곳에는 9세기에 조성한 철조비로자나불, 보조선사의 부도 및 부도비, 그리고 대적광전 앞의 쌍탑과 석등이 모두 온전하게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장흥 보림사는 9세기 불교미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보림사 삼층석탑
과 석등

동서로 마주 보고 세워진 두 탑은 구조와 크기가 거의 같습니다. 2단으로 쌓은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놓고, 상륜부를 얹은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입니다.

석탑의 높이는 서탑이 5.4m, 동탑이 5.9m입니다.
- 서탑


기단은 아래층보다 위층이 훨씬 높습니다. 하층기단 면석에는 모서리기둥과 2개의 가운데기둥을 새긴 데 비해, 상층기단 면석에는 모서리기둥과 1개의 가운데기등을 새겼습니다.
또한, 상대갑석은 부연이 얕아서 상대적으로 얇게 보입니다.
- 동탑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 쌓았습니다. 각 층 몸돌에 모서리기둥을 새겼습니다. 지붕돌 낙수면의 경사는 급한 편이고, 전각
(轉角)에서 강하게 반전되어 있습니다. 지붕돌 아랫면의 층급받침은 5단입니다.

상륜부에는 노반, 복발, 앙화, 보륜, 보개가 다 갖추어져 있습니다. 다만, 수연과 찰주 및 거기에 꽂히는 용차와 보주가 빠져 있을 뿐입니다.
이만큼이나마 상륜부가 남아 있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 석등


석등은 두 탑 사이에 서 있는데, 통일신라시대 석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높이는 3.12m입니다.

네모꼴의 지대석 위에 연꽃무늬를 새긴 팔각의 하대석을 얹고, 그 위에 가늘고 긴 간주석을 세운 후, 다시 상대석을 얹어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받쳐주도록 하였습니다. 화사석은 8각으로, 4면에만 창을 뚫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로 넓은 지붕돌을 얹었는데, 각 모서리 끝 부분에 귀꽃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석등의 상륜부는 보
륜 위에 지붕돌을 축소한 보개가 있으며, 맨 위에 앙련으로 받친 화염보주가 있습니다.
- 보림사 삼층석탑
과 석등

탑의 조성연대와 중건사실은 1934년에 이 탑을 해체·복원할 때 사리장엄구와 탑지(塔誌)의 발견으로 밝혀졌습니다.

탑지에 의하면, 이 탑은 경문왕이 선왕인 헌안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경문왕 10년(870년)에 세웠습니다. 그 뒤에도 1478년·1535년·1684년 등 3차례에 걸쳐 중수되었습니다. 경문왕 때 석탑을 세우면서 석등도 같이 세웠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p.s.) 보림사 대웅보전의 사진입니다. 사진은 황도사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덧글

  • 진성당거사 2011/08/17 12:59 # 답글

    이 탑지와 사리장엄구 가운데 동조불 두 개가 6.25 전쟁 중에 소실된 것은 참 안타깝습니다. 보림사 대웅보전이 소실된 것도 안타깝구요.
  • 하늘사랑 2011/08/17 16:32 #

    장흥 보림사는 6·25전쟁 중에 빨치산의 은신처가 되는 것을 막는다는 이유로 아군에 의한 방화로 불에 타는 바람에 당시 보림사 건물 가운데 살아남은 것은 일주문과 사천왕문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때 대웅보전 등 건물 대부분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삼층석탑의 보수과정에서 1층 몸돌에서 납석제 사리호와 놋쇠 합 3개, 백자 접시와 함께 남탑과 서탑에서 각각 탑지가 나왔다고 합니다. 납석제 사리호와 탑지는 통일신라시대에 봉안한 유물이고, 나머지는 조선시대에 탑을 중수하면서 넣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때 납석제 사리호에서는 4과의 사리가 수습되었고, 사리호 주변에는 네모난 향나무 조각과 가사 조각이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성당거사님이 이야기한 동조불상에 대한 언급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자세한 사연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진성당거사 2011/08/17 16:48 #

    보림사 대웅전을 본 지가 꽤 되었는데, 혹시 사진 찍은 것 있으시면 한번 올려주시겠습니까? 그렇게 웅장한 법당이 깡그리 사라져버렸다는 건 정말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새로 지은 건물은 아무리 생각해도 옛 사진에 나온 그 기품있는 모습과는 거리가 좀 있는 것 같지만 말이지요.

    동조불에 관해서라면, 제가 착각을 했군요. 철불이 있는 절이라는 것 때문에 증심사랑 보림사를 착각해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동조불 두개는 1933년에 광주 증심사 석탑에서 나온 유물인데, 6.25 직전 공비출몰을 피해 광주 시내의 경찰서 금고 안으로 옮겨진 후로 종적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 하늘사랑 2011/08/17 17:30 #

    제가 찍은 것 가운데는 없어서 다른 분이 찍은 보림사 대웅보전의 사진을 대신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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