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보림사 일주문과 사천왕상 문화·유적

- 장흥 보림사


지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보림사(寶林寺)는 원표대덕(元表大德)이 당나라와 인도를 두루 순례한 후 신라로 돌아와 경덕왕 18년(759년)에 가지산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합니다. 그로부터 100년쯤 뒤 헌안왕 4년(860년)에 통일신라시대의 구산선문(九山禪門) 가운데 하나인 가지산파(迦智山派)의 3조(祖)인 보조선사(普照禪師) 체징(體澄, 804~880)이 이곳으로 옮겨온 이래 수행자가 구름처럼 모여들어 큰 절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원표대덕에 의해 화엄종 사찰로 출발한 가지산사가 보조선사가 와서 주석한 이래 선종 사찰 보림사로 바뀐 것입니다. 보림사에는 다음과 같은 창건설화가 전합니다.

보조선사가 가지산에 도착해 땅을 보니 절집을 세우기에 좋은 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큰 못이 있었고, 이곳에 뱀, 이무기, 용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보조선사는 궁리 끝에 도력으로 사람들에게 눈병을 앓게 한 후, 가지산 아래 못에 흙과 숯을 가져다 넣으면 눈병이 나을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흙짐과 숯짐을 진 안질 환자가 줄을 잇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못은 메워졌습니다. 보조선사는 안 가려고 버티는 용을 지팡이로 때려서 내쫓고 절을 지었습니다.

보림사라는 절 이름은 보조선사가 입적한 후 헌강왕이 내려준 것입니다. 보림사는 중국 남종선의 초조인 육조 혜능이 주석하던 소주 조계산 보림사와 같은 이름입니다. 따라서 인도의 가지산 보림사와 함께 3보림으로 일컬어졌습니다. 이것은 보림사가 우리나라 선종의 본산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일주문


보림사 일주문(一柱門)은 그 인상이 만만치 않습니다. 포작이 여러 겹으로 중첩되어 화려하고 장중한 느낌이 듭니다.

일주문 정면에는 '가지산 보림사(迦智山
寶林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그 안쪽에는 '선종대가람(禪宗大伽藍)'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 현판 구석에는 옹정(雍正) 4년 그러니까 영조 2년(1726년)이라는 연대가 적혀 있습니다. 일주문 또한 그 무렵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사천왕상


일주문을 지나면 천왕문이 있습니다.


천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집이며, 중종 34년(1539년)에 처음 조성된 뒤 현종 9년(1668년)과 정조 1년(1777년)에 중수되었습니다. 이곳 좌우 칸에 대단히 큰 사천왕상 4구와 금강역사상 2구가 모셔져 있습니다.
- 사천왕상


사천왕상은 보통 마귀를 발로 짓밟고 있는 형상으로 조성되지만, 이곳 사천왕상은 눈이 동그란 마귀가 동방지국천왕(위 사진에서 왼쪽 사천왕상)의 발을 받들고 있습니다. 그려 넣은 것이 아니고 갈색 유리로 만들어 붙인 사천왕상의 눈동자도 특이합니다. 특히 머리에 쓰고 있는 보관은 매우 화려합니다.

보림사 사천왕상은
중종 34년(1539년)에 처음 조성되었고, 정조 4년(1780년)에 중수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목각 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각 또한 매우 뛰어나 조선시대 사천왕상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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