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골 석불좌상 문화·유적

- 심수골 석불좌상

운골(白雲谷)은 남남산에서 가장 크고 긴 골짜기입니다. 이 골짜기 끝에 백운암(白雲庵)이 있고, 이곳에서 천룡재를 통해 수리봉(高位峰)과 천룡사터 및 용장계곡과 연결이 됩니다.

신라시대에 백운사라는 절이 있어서 그 이름을 따라 백운대
(白雲臺) 혹은 백운골(白雲谷)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이곳 골짜기에 구름이 가득하면 마치 구름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만큼 이 골짜기가 깊다는 것을 표현한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백운암으로 가는 길

지금 골짜기 옆으로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있어 차량을 이용하여 백운암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백운암으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서부터 차량이 다니지 못하게 길을 막아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 심수골로 가는 갈림길

이 백운골 안으로 들어가면, 백운암 동쪽으로 칠불암 정상 봉수대에서 흘러내린 골짜기가 있습니다. 이 골짜기를 심수골이라 합니다. 돌 틈에서 물이 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침식골(寢息谷)이라고도 합니다.

백운암으로 올라가다 보면 심수골로 들어가는 갈림길이 있습니다. 길가에 팻말이 있어 찾아가기에 별로 어려움은 없습니다.

- 심수골 석불좌상으로 가는 길

갈림길에서 심수골로 들어서면 약간 가파른 좁은 산길이 계속 이어집니다.
- 심수골 석불좌상

그렇게 얼마를 올라가면 절 이름을 알지 못하는 절터가 있고, 이곳에 머리 없는 석불이 하나 있습니다.
심수골 석불좌상이라고 하는 석불입니다.

이 석불은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이 갖추어진 연화대좌 위에 항마촉지인을 하고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얼핏 보아도 신체 비례나 조각 솜씨가 전성기보다 떨어짐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 심수골 석불좌상

현재 머리 부분은 없으나 나머지 부분들은 대체로 잘 남아 있습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선명하며,
체구는 빈약한 편입니다. 특히 가슴이 마치 여자의 가슴처럼 봉긋하게 부풀어 있어 이채롭습니다. 항마촉지인을 취한 왼손은 배꼽 밑이 아닌 오른쪽 옆구리 쪽까지 닿았고,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을 누르고 있습니다.

우견편단(右肩偏袒)의 가사에는 옷 주름을 넓게 표현하였습니다. 뒤쪽까지 왼쪽 어깨에서부터 흘러내려 무릎 위로 넘실거리는 가사 자락이 가지런합니다. 결가부좌한 두 다리 사이 공간에도 부채꼴로 옷 주름을 표현하였습니다.
- 심수골 석불좌상

불대좌의 하대석은
온전하게 잘 갖추어진 8각으로, 8엽의 복련(覆蓮)이 새겨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흙으로 덮여 있어 그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중대석은 8각으로,
기둥이나 안상 무늬도 없이 그저 밋밋하게 처리하였습니다. 중대석 위에는 상대석이 놓여 있는데, 중대석과 하대석보다 너무 커서 균형이 잘 맞지 않습니다.

다른 불대좌에서도 그러하듯 하대석의 복련은 소박하지만 상대석의 앙련
(仰)은 보상화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지상과 천상을 구별하여 나타냄이라고 합니다.
- 심수골 석불좌상

심수골 석불좌상은 원래 넘어져 있던 것을 마을 사람들이 일으켜 세웠다고 합니다. 찾는 사람도 드문 구석진 곳 석불까지 마음을 쓴 그 정성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이 석불은 가슴보다 허리를 가늘게 표현하여 풍만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어깨의 선이 직각으로 각이 져 경직된 느낌 또한 듭니다. 대좌의 비례나 세부적인 조각 수법 등으로 미루어 9세기 전반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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