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덕리 당포진 성터에 올라... 문화·유적

- 당포진 성터


름다운 다도해에 있는 섬 미륵도는 섬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곳입니다.

쪽빛 바다와 점점이 떠 있는 숱한 섬들이 만들어 내는 풍광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섬 미륵도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곳은 삼덕리입니다. 해안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 풍광은 말할 것도 없고 이곳에는 소박한 돌장승과 목마, 그리고 옛 성터가 남아 있습니다.

삼덕리(三德里)는 미륵섬 서쪽 해안에 있는 마을입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초기 당포만호진(唐浦萬戶鎭)이 설치되면서 크게 번성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14년에 이곳에 있는 세 마을인 대청동(大晴洞, 당포마을), 원항동(院項洞, 원항마을), 관유동(寬柔洞, 관유마을)을 통합하여 삼덕리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 당포진 성터


당포마을 뒷산에 당포진 성터가 있습니다.

이곳은 고려 공민왕 23년(1374년)에 최영(崔瑩) 장군이 병사와 백성을 이끌어 성을 쌓고 왜구를 물리친 곳입니다. 그 후 임진왜란 때도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서 왜적을 물리쳤습니다. 이때 전투를 당포승첩(唐浦勝捷)이라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사천 해전을 승리로 이끈 다음 당포로 와서 적선과 적장을 무찌르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 당포진 성터에서 바라본 삼덕항

당포진 성터 아래에 당포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은 마을과 마주 보고 있는 장군봉 꼭대기에 당집이 있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원래는 '당개' 또는 '당포(堂浦)'라 하던 것을 조선시대 초기 수군만호진(水軍萬戶鎭)이 설치되면서 큰 포구라는 뜻을 지닌 '당포(唐浦)'로 바뀐 것으로 보입니다.

한때 성 안쪽의 마을이라 하여 '성안' 또는 '성내(城內)'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청(
大晴)'이라고 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구한말 수군만호진이 폐영된 후 마을 사람들의 근심 걱정이었던 고된 부역에서 벗어나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장군봉 아래로 보이는 마을은 원항마을입니다. 마을 이름은 옛 당포만호진 입구의 원문(轅門)에 해당하는 잘록한 목(項)을 형성한 곳에 있다 하여 원래 '원항(轅項)' 또는 '원목'이라 하다가 후에 '원항(院項)'으로 바뀐 것으로 보입니다.
- 당포진 성터에서 바라본 장군봉


당포진 성터에 오르면 원항마을 뒤로 있는 장군봉이 마주 보입니다.

장군봉(將軍峰)이란 이름은 산 능선 위로 우뚝 솟은 둥근 바위가 마치 투구에 갑옷 차림을 한 장군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이야기와 임진왜란 때 의병장 탁련(卓鍊)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여기에 진을 쳤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 등이 전합니다.
- 당포진 성터에서 바라본 앞바다


성터에 올라 앞바다를 바라봅니다.

누군가가 이곳을 에게 해의 진주
산토리니 섬과 견주어도 빠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그렇게 말했을까요? 삼덕리(三德里), 사람마다 이곳의 세 가지 아름다움을 무엇으로 꼽을지 서로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디 이곳의 아름다움이 꼭 세 가지뿐이겠습니까?

덧글

  • 2011/12/28 14:0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하늘사랑 2011/12/28 14:48 #

    이렇게 지적해주어 고맙습니다. 글의 일부를 수정하였습니다. 지적하신 부분은 '세계 속의 한반도 해양문화'라는 사이트에서 가져온 자료에 따른 것입니다.

    남은 한해와 새해 잘 보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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