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오량리 석조여래좌상 문화·유적

- 오량리 석조여래좌상


영에서 거제 쪽으로 신거제대교를 건너자마자 나타나는 곳이 오량리입니다. 이곳 마을에는 오량성이 있고, 마을 뒷산 자락에는 신광사라는 절에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석불이 있습니다.

오량리 석조여래좌상라고 하는 이 석불은
1950년경 이곳 절골 석불암 앞쪽 산 밑을 개간하던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출토 당시 목이 부러져 있었고, 귀와 코 그리고 손가락 부분이 파손돼 있었으며, 불대좌는 중대석이 없어진 상태였습니다.

이 석불이 발견되었을 때 통영에 있는 큰 절인 안정사로 옮기려 했습니다. 그런데 인부들이 이 석불을 들어 조금 옮긴 후 잠시 쉬었다가 다시 들려고 하니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인부를 동원했지만 들리지 않아 다시 위로 옮기려고 하니 들려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 오량리 석조여래좌상


석불은
신광사 경내에 있는 '삼천불조오십삼불전(三千佛祖五十三佛殿)'이라는 석굴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호분(胡紛)을 발라 놓아 그 원형을 알아보기가 어려웠으나, 지금은 모두 벗겨 놓았습니다.

손과 발 등 몇몇 곳이 파손되었는데, 특히 얼굴은 코도 눈도 입도 다 없어져 어떤 얼굴을 하였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상체는 반듯하게 각진 어깨와 함께 가냘파 보이며, 하체는 상대적으로 높고 큼직해 보입니다. 법의(法衣)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비교적 얇습니다. 왼손은 무릎 위에 얹고, 오른손은 무릎 아래로 내린, 이른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습니다. 석가여래좌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불대좌는 하대석에는 복련이, 상대석에는 앙련이 새겨져 있습니다. 중대석은 없어져 새로 해 넣었는데, 하대석과 상대석의 받침을 보면 원래 팔각의 중대석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오량리 석조여래좌상


그런데
어떻게 육지도 아닌 섬인 거제도에 이 정도 크기의 석불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요?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1170년 고려 의종이 정중부의 난으로 둔덕면 거림리에 쫓겨와 폐왕성을 쌓고 3년간 머물면서 이 석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폐왕성이 이 석불 뒷산에 있고, 그 산 반대쪽 아래가 거림리입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를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저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만 흘려 넘겨버리기도 어렵습니다.

                     -  근하신년(謹賀新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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