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보문단지와 덕동호를 지나 양북으로 넘어가기 전에 모차골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옛날 경주에서 감포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 모차골에서 고개를 넘고 넘어 기림사를 거쳐 갔습니다.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 장례식 때 화장한 뼈를 감포 앞바다에 있는 대왕암에 안치하려고 갈 때와 신문왕이 부왕인 문무왕을 위해 완공한 감은사를 찾아갈 때도 이 길을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길을 문무왕 장례길 또는 신문왕 행차길이라고 합니다.
신라 이후로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이 오갔을 이 길은 1920년대 추령재를 넘는 신작로가 생기면서 쓸모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더군다나 차들이 씽씽 다니는 4번 국도가 나 있는 지금에는 더 말할 여지조차 없습니다. 신문왕 행차길은 한때는 마차도 다녔다고도 하지만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서 길도 희미해졌습니다. 이처럼 한동안 잊힌 이 길이 최근에 복원되었습니다.

개나리꽃과 진달래꽃이 활짝 핀 포근한 봄날 휴일에 이 길을 한 번 찾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보통 이 길은 모차골에서 기림사 쪽으로 많이 넘어가는데, 이번 나들이는 기림사에서 모차골 쪽으로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기림사 쪽이 차를 대기도 쉽고, 기림사도 다시 한 번 보고, 그리고 길을 되돌아 나올 것까지 생각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기림사 일주문 옆으로 난 길로 빠져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걸어갑니다. 봄날을 맞아 감로암 주위에는 짙은 꽃향기와 함께 꽃들이 만발하였습니다.

감로암을 지나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차밭이 나타납니다. 이곳 길가는 노란 꽃 흰 꽃으로 온통 꽃대궐을 이루었습니다.

봄소식을 알리는 개나리꽃이 지금 한창입니다. 햇살에 비친 노란색으로 눈이 부십니다.

차밭을 지나 길을 올라가다 크게 한 번 굽어 돌면, 갑자기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떡하니 버티고 섰습니다.

가는 길에 신문왕 행차길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이 길이 신문왕 행차길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기림폭포 쪽을 향해 계속 가다 보면, 한 면에 '나무아미타불'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는 바위를 볼 수 있습니다.

우렁찬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이곳의 정적을 깨뜨리는 것은 오직 이 소리뿐입니다. 기림폭포가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림폭포는 용연폭포라고도 합니다. 폭포는 길가에서는 잘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 위험해 보였지만 길에서 내려서서 폭포를 바라봅니다.

폭포를 지나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도통골로 가는 길과 불령을 지나 모차골 쪽으로 가는 길이 갈라집니다. 불령으로 가는 길은 왼쪽으로 나 있는 산길입니다.

갈림길에서 불령까지 단조로운 산길이 이어집니다. 불령에 가까워질수록 산길은 오르막입니다.

고개 능선 길가에 불령봉표(佛嶺封標)가 있습니다.
이것은 효명세자가 죽은 다음 해인 신묘년(1831년)에 기림사 일원의 산을 정해 이곳에서 목탄을 생산해서 효명세자의 묘에 사용할 제수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한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효명세자는 조선 제23대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에 태어난 외아들입니다.
돌에 새겨진 '延慶墓 香炭山因 啓下 佛嶺封標'라는 글자는 "연경의 묘에 쓸 향탄 즉 목탄을 생산하기 위한 산이므로 일반백성들이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임금의 명을 받아 불령에 봉표를 세운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연경'은 효명세자의 묘호입니다.

불령을 넘어서면 세수방(洗手坊)을 지나 수렛재로 향하는 산길이 이어집니다. 세수방이란 이곳 개울물에서 세수도 하고 피곤한 몸을 잠시 쉬어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수렛재로 가는 내내 길은 비교적 평탄합니다. 도중에 돌축대가 남아 있는 빈 터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후기까지만 해도 숯을 굽던 곳이라고 합니다. 수렛재에 가까워지면서 다시 오르막길이 이어집니다. 아직은 나뭇잎이 돋지 않아 이곳 숲 속 산길은 삭막합니다. 물론 가는 도중 개울물도 만나긴 하지만 단조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간간이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 있어 이런 무료함을 달래줍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니 수렛재가 바로 눈앞에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되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도 시간이고, 몸도 지쳐갑니다. 더군다나 다시 되돌아갈 일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모차골로 가는 것을 이쯤에서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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