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락당, 그리고 계정 문화·유적

- 독락당 계정


락당(獨樂堂)은
이언적한때 살았던 집으로, 옥산서원(玉山書院)의 안쪽 계곡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중종 27년(1532년) 불혹의 나이에 중앙 정치무대에서 쫓겨난 이언적은 둘째 부인이 사는 이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원래는 태어나고 자란 양동마을로 돌아가는 것이 맞겠으나, 자신의 초라한 처지를 보이기 싫었던 때문이었겠지요. 당시 이곳에는 둘째 부인이 지은 안채와 숨방채, 그리고 아버지가 지은 작은 정자가 있었습니다. 이언적은 사랑채인 독락당을 지으면서 이곳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증축하여 중앙 정계로 복귀할 때까지 7년간을 살았습니다.

그러면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은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그는 조선 종중대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며 성리학자였습니다. 죽은 후에 한휜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 정암 조광조, 퇴계 이황과 함께 동방오현(東方五賢)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았습니다. 이런 이언적을 제향한 서원이 옥산서원입니다.
- 독락당 중문


독락당으로 향하는 중문을 들어서면 앞쪽이 담장으로 막힌 골목길이 나타납니다. 독락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막힌 담장 조금 못 미쳐 오른쪽 옆으로 나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문을 들어선 후 독락당 안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하게 동선을 직각으로 한 번 꺾어 놓았습니다.
- 개울 쪽에서 바라본 돌담길


독락당 담장을 따라 좁고 긴 돌담길이 나 있습니다. 사랑채인 독락당의 앞 담장과 머슴들이 기거하던 공수간의 뒷담장 사이에 있는, 미로와 같은 이 길은 개울로 통합니다.

- 살창이 나 있는 담장


개울 쪽에서 독락당의 담장 쪽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이곳 담장 가운데에 살창이 하나 나 있습니다. 이 살창은 독락당 방안에 앉아서도 계곡을 바라볼 수 있게 마련된 것인데, 이 살창으로 말미암아 독락당과 개울은 서로 닫힌 공간이 아니라 열린 공간으로 존재합니다.

- 독락당 계정


독락당의 보석은 누가 뭐라 해도 별당인 계정(溪亭)입니다.

이언적이 은거하면서 아버지가 쓰던 3칸짜리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바꾸고 옆으로 2칸을 달아내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계정은 자계(紫溪)라는 개울에 맞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려면 수고스럽더라도 개울을 건너가 맞은편 쪽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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