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릉의 십이지신상 문화·유적

- 흥덕왕릉의 십이지신상

주에 있는 신라 왕릉 가운데 실제 피장자와 일치하는 능이 과연 몇이나 될지 말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신라 왕릉이 객관적인 근거에 의해 지정된 것보다는 필요에 의해 임의로 지정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고 이근직 교수는 생전에 이처럼 잘못 지정된 신라 왕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하는 관련 자료들이 너무 부족하다 보니
실체를 밝히는 데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신라 왕릉에 있는 십이지신상을 서로 비교해 보면 그 시대적 관계를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지는 않을까 해서 한 번 모아 보았습니다.

신라 왕릉의 이름은
문화재지정명칭을 썼으나 실제로는 이근직 교수의 학설에 따랐습니다(괄호 안은 이근직 교수의 학설). 그리고 장지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따랐고, <삼국유사>의 기록도 덧붙였습니다.

성덕왕릉
성덕왕의 장지: 이거사(移車寺) 남쪽

성덕왕릉은 기록과 대체로 일치하는 능입니다. 십이지신상을 능의 호석에 새기지 않고 따로 만들어 세웠습니다. 십이지신상이 본격적으로 호석에 새겨지기 전의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이지신상은 무복차림입니다.

② 김유신묘(경덕왕릉)
김유신의 장지: 금산원(金山原), <삼국유사> 서산(西山) 모지사(毛只寺)를 동향한 산봉
경덕왕의 장지: 모지사(毛祇寺) 서쪽

김유신묘는 실제 피장자가 누구인가를 두고 논란에 있습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왕릉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십이지신상의 뛰어난 조각 솜씨로 볼 때 경덕왕릉일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십이지신상은 능의 호석에 새겨져 있고, 평복차림입니다.

③ 괘릉(원성왕릉)
원성왕의 장지: 봉덕사(奉德寺) 남쪽에서 화장, <삼국유사> 동곡사(洞鵠寺)

괘릉은 원성왕릉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십이지신상은 능의 호석에 새겨져 있고, 무복차림입니다. 이런 형태의 십이지신상이 신라 왕릉의 십이지신상에서 표본이 됩니다.

④ 경덕왕릉(소성왕릉)
경덕왕의 장지: 모지사(毛祇寺) 서쪽
소성왕의 장지: 기록 없음

경덕왕릉도 실제 피장자가 누구인가를 두고 논란이 있습니다. 십이지신상만을 놓고 보면 경덕왕릉보다는 소성왕릉 쪽이 더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십이지신상은 무복차림입니다.

⑤ 헌덕왕릉
헌덕왕의 장지: 천림사(泉林寺) 북쪽

헌덕왕릉은 실제 피장자와 일치할 것으로 보는 능입니다. 솜씨는 떨어지지만, 십이지신상이 김유신묘의 것과 많이 닮았습니다. 복장도 다른 왕릉의 십이지신상에서는 보기 어려운 평복차림입니다. 이전의 왕릉과는 왜 이렇게 다르게 했을까요?

⑥ 흥덕왕릉
흥덕왕의 장지: 안강 북쪽 비화양(比火壤), 왕비 장화부인(章花夫人)과 합장

흥덕왕릉은 피장자가 확인된 능입니다. 기록과도 일치하고, 이곳에서 발견된 비편에 '흥덕'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십이지신상은 무복차림입니다. 괘릉의 십이지신상을 본떴습니다.

⑦ 능지탑
희강왕의 장지: 소산(蘇山)

이근직 교수는 능지탑의 석물을 희강왕릉의 것으로 보았습니다. 십이지신상만 보면 시대적으로 희강왕 대의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⑧ 구정동 방형분(민애왕릉)
민애왕의 장지: 기록 없음

구정동 방형분이 과연 신라 왕릉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신라 왕릉이라면 다른 왕릉과는 달리 왜 방형으로 했을까요? 십이지신상은 무복차림입니다.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호석은 정사각형에 가깝게 변했습니다.

⑨ 진덕여왕릉(신무왕릉)
진덕여왕의 장지: 사량부(沙梁部)
신무왕의 장지: 제형산(第兄山) 서북쪽

진덕여왕릉 역시 피장자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습니다. 능의 형식이나 기록을 볼 때 진덕여왕릉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십이지신상은 무복차림입니다.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호석은 구정동 방형분에서처럼 정사각형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구정동 방형분보다 조각이 평면적이고, 솜씨도 떨어집니다. 이근직 교수는 신무왕릉으로 보았습니다.

p.s.) 당시 신라 왕위 계승표

진덕여왕→…→성덕왕효성왕경덕왕혜공왕선덕왕원성왕소성왕애장왕헌덕왕흥덕왕희강왕민애왕신무왕

덧글

  • 식용달팽이 2012/05/25 20:06 # 답글

    근래 나온 이근직 선생님의 유저를 보니 2006년에 쓰신 논문과 거의 같은 내용이더군요. 작년에 오사카에 갔을 때 다나카 선생님도 이근직 선생님의 죽음에 안타까워 했죠. 경주에 갈 때마다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문제를 다루어 보겠다고 건드리는 분들이 많은 걸 보면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나저나 12지의 선후관계 구분이 참 큰 일이네요. 기존의 미술사적인 연구 상과를 믿자니... 크게 신뢰가 안 가고... ㅎㅎㅎ
  • 하늘사랑 2012/05/26 07:02 #

    지금으로서는 이 문제에 대한 진전된 연구 성과가 나오길 관심을 갖고 기다려보아야겠지요.
  • 솔까역사 2012/05/26 09:51 # 답글

    돌에 새겨진 그림은 천년이 지나도 잘 안 지워지는군요.
    천년의 세월이 묻어있는 석물이라 그런지 신비로운 느낌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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