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마을 서백당 문화·유적

- 양동마을 서백당


동마을의 서백당(書百堂)은 경주 손씨의 대종택으로, 안골 중심 높지막한 산 중턱에 있습니다. 이 집은 양민공(襄民公) 손소(孫昭, 1433~1484)가 만호 류복하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마을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자리를 잡은 곳이어서 그 유서가 깊습니다.

지관이 이 집터에서 '세 명의 현인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손소의 아들인 우재 손중돈과 외손자인 회재 이언적이 여기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두 사람 말고는 아직 현인에 버금가는 인물이 나오지 않았으니, 앞으로 서백당에서 한 사람의 출중한 인물이 더 태어날 것이라고 손씨들은 믿고 있습니다.

다만 회재 이후로는 외손이 큰 인물이 된다면 다른 문중에 현인을 빼앗기는 셈이라 생각하여 시집간 딸이 몸을 풀러 친정에 와도 해산만은 반드시 마을의 다른 집에서 시키는 관습을 지켜 내려온다고 합니다.

- 사랑채

본채 앞쪽 오른쪽 모퉁이에 사랑채가 있고, 이곳에 '서백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참을 인(忍)자 백 번을 쓰며 인내를 기른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구당서(舊唐書)>의 '효우(孝友)열전'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습니다.

운주사람 장공예는 9대가 한집에 살았습니다. 고종이 태산에 가는 길에 직접 그의 집에 들러서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지필묵을 청해서 참을 인(忍)자 백 자를 써서 바쳤습니다.

그래서 이 집의 당호가 '서백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루 안쪽에 걸린 또 다른 현판에 쓰인 글자처럼 '송첨'(松簷)이라고도 합니다.
-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

서백당은 행랑채, 본채, 사당의 3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평면은 행랑채가 '一'자형, 본채가 'ㅁ'자형, 그리고 사당채가 '一'자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릉에 있는 지형적 조건 때문에 행랑채가 한 단 낮은 자리에 지어져 있어 자연스럽게 본채와 위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본채는 행랑채와 전후로 나란히 배치되었고, 사당채는 본채의 오른쪽 안쪽 한 단 더 높은 곳에 있습니다.
- 양동의 향나무


사당 앞마당에 엄청나게 큰 향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이 나무는 손소가 조선 세조 2년(1456년) 집을 새로 짓고 그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나무의 나이가 500년이 넘었습니다.

나무는 높이가 9m, 둘레가 2.92m이고, 가지 길이는 사방 6m 내외입니다. 이 나무는 일반 향나무처럼 곧게 자라지 않고 마치 분재를 보는 것처럼 나무 기둥과 가지가 꾸불꾸불 꼬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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