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용강서원(龍岡書院) 문화·유적

- 용강서원의 숭절문


도군 이서면 학산리에 용강서원(龍岡書院)이 있습니다.

이 서원은
박익과 임란 14의사를 제향하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박익의 무덤은 이곳과는 멀리 떨어진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에 있습니다. 그의 무덤은 무덤 내 벽화가 발견되어 한때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박익을 제향한 서원이 밀양이 아닌 왜 이곳에 세워졌을까요?

- 용강재


박익의 손자인 소호공(嘯皐公)
박건(乾)이 조선 초기에 밀양에서 청도군 이서면 수야리로 처음 옮겨와 살았습니다. 1590년 후손들이 박건의 무덤 아래에 분암(墳菴)을 짓고, 용강재(龍岡齋)라 하였습니다.

순조 19년(
1819년)에 용강재 경내에 충열사(忠烈祠)를 창건하고, 임란 14의사를 제향했습니다. 그 후 일제강점기인 1913년에 박익의 묘우(廟宇)를 복원하고 송은선생 영당(影堂)이라 하고, 용강서당(龍岡書堂)을 세웠습니다. 1960년에 강당을 중건하고, 송은선생 영당을 여충사(麗忠祠)로, 서당을 서원으로 개편하였습니다.
- 숭절문


그러면 용강서원의 대문을 한 번 보시죠.

솟을삼문 형식인데, 가운데 2층에 누대 같은 것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없습니다. 실제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장식용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약식이지만 다른 서원에서의 누대를 대신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상의당


용강서원에는 그다지 오래된 건물이 없는 듯합니다. 비교적 근래에 지어진 것들로 보였습니다. 그 가운데 상의당이 먼저 눈에 띕니다. 이 건물은 팔작지붕에 겹처마와 주심포를 취했습니다. 지붕이 조금 번잡스럽지만, 건물은 그런대로 위엄을 갖추었습니다.

용강서원에서 강당 이름은 상의당(尙義堂)입니다. 그리고 대문 이름은 숭절문(崇節門)입니다. 절개와 의로움, 이것은 박익과 임란 14의사를 상징하는, 용강서원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상의당 현판


박익(朴翊, 1332~1398)은 고려 때 사재소감(司宰少監) 등의 벼슬을 지냈고, 여러 번 왜구와 여진을 토벌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조선이 개국되자 벼슬을 사양하고 두문동에 들어가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그는 고려 왕조에 대한 절개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리고 임란 14의사는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과 연합하여 의병을 일으켜 청도와 경산 등지에서 왜적에게 큰 타격을 준 삼우정(三友亭) 박경신(朴慶新, 1539~1594) 등 14분의 의사를 말합니다. 이들 14의사는 밀양 박씨 일족으로, 부자, 형제, 숙질, 종형제 사이였습니다. 그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몸을 던져 이 지역을 수호하여 위국충절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덧글

  • 팬저 2012/06/29 07:50 # 답글

    숭절문의 경우 특이하게 솟을대문인데 누각이 자리잡고 있네요. 창원의 사미루가 그렇는 것을 보았는데 숭절문도 그렇네요. 그래도 숭절문이 잘 보존되어서 그런지 상태가 좋아보입니다.
  • 하늘사랑 2012/06/29 15:32 #

    창원 사미루가 그런 모양이었군요. 서원은 밀양 박씨 문중에서 잘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 박종화 2012/08/23 11:18 # 삭제 답글

    용강서원도 다녀 가셨군요.하늘사랑님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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