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흥사터의 받침돌 문화·유적

- 운흥사터 부도군

름 그대로 운흥사(雲興寺)는 한때 구름처럼 신도가 많이 모여든, 통도사에 버금가는 큰 절이었다고 합니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조선시대까지 존재했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당이 이곳에서 서생포 왜장 가토 기요마사와 4차례의 담판을 가졌고,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가 이곳에서 득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경전을 목판에 새기고, 그것을 찍을 수 있는 종이를 직접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절은 1864년에 간행된 <대동지지(大東地志)>에도 그 이름이 보이다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그 연유를 알 길이 없습니다. 지금은 잡초에 들러 싸인 부도 몇 기와 석조 수조만 남았습니다.

- 부도군으로 올라가는 산길


운흥사터 부도군은 운흥사터에서 남쪽으로 약 150m쯤 떨어진 능선에 있습니다. 이곳은 '운흥동천(雲興洞川)'이 흐르는 반계계곡 끝에서 왼쪽 내를 건너 산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숲으로 둘러싸인 이 산길을 5분쯤 걸어 올라가면 닿을 수 있습니다.
- 받침돌


운흥사터 부도군이 있는 곳을 둘러보다 보면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꽃문양이 화려하게 베풀어진 받침돌입니다.
- 꽃문양


받침돌 면석에 새겨진 꽃문양을 한 번 보시죠. 어떻습니까?
- 모서리의 모습


모서리 쪽의 모습입니다. 잘 짜인 지대석이 꽃문양이 새겨진 면석들을 단단히 받치고 있습니다.
- 안쪽의 모습


안쪽의 모습입니다. 안쪽은 바깥쪽과는 달리 다듬지 않아 돌의 거친 면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받침돌은 여덟 개의 면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들 면석마다
베풀어진 조각들은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습니다. 이 받침돌을 얼마나 정성을 들여 만들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위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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