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고적도보>로 우리 문화재 살펴보기(1): 경주 출토 석불 2기 문화·유적

- 십일면관음보살상 (사진 출처: 조선고적도보, 1917년 출판)

100년 전 우리 문화재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서로 비교해보는 것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일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발간된
<조선고적도보>를 통해 우리 문화재의 지난 모습을 살펴보고, 그리고 지금 모습과 서로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조선고적도보>에 낭산석조보살상(狼山石造菩薩像)으로 소개된 불상입니다.

이 불상은 당시 경주 낭산 서쪽, 즉 중생사터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불상은 왼팔이 어깨 부위부터 완전히 떨어져 나갔고, 하체 대부분이 땅속에 묻혀 있습니다. 이 사진으로 보아서는 단독 불상이 아니고, 삼존불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광배와 불대좌를 갖춘 본존불이 있었고, 이 불상은 오른쪽 협시보살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본존불과 왼쪽 협시보살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 십일면관음보살상, 경주 낭산 출토, 통일신라 8세기


현재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모습입니다. 정병(淨甁)을 든 왼팔은 복원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왼발도 복원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불상은 정수리의 부처상 하나와 주위의 보살의 얼굴까지 합하여 총 11개의 얼굴이 있다고 하여 십일면관음보살상(十一面觀音菩薩像)이라고 합니다.
- 석조여래입상
(사진 출처: 조선고적도보, 1917년 출판)

<조선고적도보>에 석조석가여래상(石造釋迦如來像)으로 소개된 불상입니다.

책에서는 이 불상이 경주에 있었다고 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딘지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경주의 제법 너른 들판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근래에 그곳이 왕정골(王井谷)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왕정골은 경주 반월성 앞 골짜기로, 도당산 동편에 있습니다. 궁궐에서 사용하던 우물이 남아 있다 하여 그렇게 불립니다.

불상은 무릎 아랫부분이 땅속에 묻혀 있습니다. 땅 밖으로 드러난 부분은 보존상태가 비교적 좋습니다.

- 석조여래입상
, 경주 왕정골사지 출토, 통일신라 8세기 후반

현재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모습입니다.

이 불상은 몸과 광배가 한 돌로 되어 있습니다. 무릎 아랫부분은 없어졌지만, 남아 있는 부분은 거의 완전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사진에서 당시 서 있는 모습으로 보아서는 지금 없어진 부분도 땅속에 묻혀 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오른손은 손등을 밖으로 향한 채 가슴 부근에 대고 있고, 왼손은 손바닥을 내보이며 배에 대고 있습니다. 옷 주름은 사실성이 강조된 당나라 불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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