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고적도보>로 우리 문화재 살펴보기(12): 영주 비로사 부도비와 부도 문화·유적

-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비(위:이수, 가운데:비신, 아래:귀부) (사진 출처: 조선고적도보, 1918년 출판)


북 영주 비로사(毘盧寺)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고, 신라 신문왕 때 승려 진정이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소백산사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여러 차례 중창되었으나, 1908년에 일어난 병화로 법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타버려 거의 폐사로 남게 되었습니다. 1912년 이곳을 탐방한 다니이 세이치
(谷井済一)의 기록에는 "고려시대 진공대사 묘탑은 파괴되었고, 비는 넘어져 비신이 결단되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병화를 당한 뒤 도굴꾼의 약탈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조선고적도보>의 사진도
다니이 세이치의 기록과 다르지 않습니다. 위 사진은 당시 진공대사보법탑비의 모습입니다. 부도비는 완전히 무너져, 이수, 비신, 귀부가 따로 있습니다. 비신도 여기저기 깨어졌는데, 깨어진 한 조각은 귀부 옆에 있습니다.
-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비 (사진 출처: 블로그 <이 땅에서 잘 놀기>
)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비(毘盧寺眞空大師普法塔碑)는 1972년에 지금의 형태로 복원되었습니다.

귀부는
용머리 형태를 하였고, 다소 둔중한 감이 있으며, 새김도 규모에 비해 얕습니다. 비좌도 낮은 편이며, 귀갑문은 연속된 육각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수는 산 모양을 하였고, 양 모서리가 파손되었으며, 다소 도식화된 운룡문이 얕게 새겨져 있습니다. 전면 중앙부에 '고진공대사비(故眞空大師碑)'라는 전액이 새겨져 있습니다.

진공대사(眞空大師, 855~937)는 경주 출신으로, 가야산으로 들어가 선융화상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습니다. 이후 도의선사의 자취가 서린 진전사를 찾는 등 여러 곳을 다니며 선수행을 하였습니다. 그는 왕의 부름을 받아 경주와 개경 등을 방문하기도 했고, 소백산사를 중수했을 뿐 아니라 마지막 7~8년을 이곳에서 주석하다가 입적하였습니다.

그가 입적하자 400여 명의 문도들은
절에서 300보 떨어진 곳에서 장사를 지내고, 태조에게 탑비를 세워줄 것을 주청하였습니다. 이에 태조는 시호를 진공대사, 탑호를 보법지탑이라 내리고, 최언위에게 비문을 찬하도록 하였습니다. 부도비는 그가 입적한 지 2년 만인 939년 8월 15일에 세워졌습니다.
-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의 잔석
(사진 출처: 조선고적도보, 1918년 출판)

이제 진공대사의 부도에 대해 알아볼까요?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터(毘盧寺眞空大師普法塔址)의 모습입니다.

부도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2매 석재 위에 2단의 네모꼴 석재만 남아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는 부도의 형태가 어떠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혹시 방형 부도는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은 해봅니다. 그러면 이 부도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 위치를 알지 못합니다. 다만 진공대사보법탑비 부근 어디쯤이었을 것이라고 짐작될 뿐입니다.
- 비로사 동봉 부도
(사진 출처: 조선고적도보, 1918년 출판)

비로사의 또 다른 부도인 비로사 동봉 부도(毘盧寺東峰浮屠)의 모습입니다. 이 부도도 지금은 없습니다. 대신 최근에 같은 모양으로 만든 부도가 비로사에 있습니다.

1964~1967년까지 신라오악종합학술조사단에 의해 실시된 조사 당시까지만 해도 비로사 동봉 부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신라와 고려시대 석조부도>의 저자 엄기표는 이 부도에 대해 "사찰 측을 따르면, 원래 자리인 비로사 동봉에서 도괴되어 마을 사람들이 비로사 경내로 이건하였는데, 1970년대 초반에 반출되어 사라졌다고 한다. 2002년 8월 안내를 받아 원래 위치를 찾아가 본 결과 전혀 흔적이 없었다."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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