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고적도보>로 우리 문화재 살펴보기(14): 사자빈신사터 사사자석탑 문화·유적

- 사자빈신사터 사사자석탑 (사진 출처: 조선고적도보, 1918년 출판)


악산 국립공원 내의 송계계곡에 사자빈신사(獅子頻迅寺)라는 절이 있었던 절터가 있습니다. 절은 이미 폐사되었고, 이곳 절터에는 석탑만 남았습니다.

<조선고적도보>에 그런 석탑 모습이 실려 있습니다. 위의 사진이 그것입니다. 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인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華嚴寺四獅三層石塔)을 본떠 만들었습니다. 원래는 9층 탑이었다고 전해지지만, 5층 몸돌까지만 남았습니다. 상층기단부에 4마리의 사자상이 있다고 해서 '사사자석탑(四獅子石塔)'이라고 합니다.
- 사자빈신사터 사사자석탑

이 탑은 2가지 점에서 눈길을 끕니다.
하나는 하층기단 면석에 탑의 조성에 대한 명문이 새겨져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층기단이 4사자상과 불상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대저석
(下臺底石)을 보면, 면마다 3개씩 안상무늬가 새겨져 있고, 안상 내에 큼직한 꽃 모양이 솟아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갑석(上臺甲石) 윗면에 16판 복련(覆蓮)이 둘려 있는 네모꼴의 높은 받침돌을 두었습니다. 고려시대 석탑에 볼 수 있는 특징들입니다.
- 상층기단의 비로자나불
(사진 출처: 조선고적도보
, 1918년 출판)


이 탑에서의 백미는
상층기단에 있습니다.

상층기단 면석에 해당하는 곳에 모서리마다 하나씩 모두 4구의 사자상을 배치하였고, 그 중심부에는 불상 1구를 안치하였습니다.
불상은 <조선고적도보>에는 지장보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수인이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어 비로자나불로 보기도 하며, 혹자는 승가상으로 보기도 합니다.
- 상층기단의 비로자나불

불상은 입술을 꽉 다문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머리에는 두건을 둘렀으며, 뒤로 질끈 맨 끈에는 앙증맞은 나비매듭이 있습니다. 불상의 머리 윗부분 즉 상대갑석 아랫부분에는 선명한 연꽃무늬가 있습니다. 도톰한 꽃잎과 확연히 드러나는 꽃술이 매력적입니다.
- 하층기단의 명문
(사진 출처: 조선고적도보
, 1918년 출판)


탑의 하층기단 한쪽 면석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79자로 된 이 명문탑의 조성에 대해 기록하였습니다.

이 명문에는 고려 현종 13년(1022년)에 월악산 사자빈신사에 구층석탑을 세웠으며, 불심으로 거란족이 '원적영소(怨敵永消; 나쁜 적들이 영영 물러가기를 바란다는 뜻)'하기를 기원함을 적었습니다.
- 하층기단의 명문


그 명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佛弟子高麗國中州月
岳獅子頻迅寺棟梁
 奉爲 代代
聖王恒居萬歲天下大
平法輪常傳此界他方
永消怨敵後愚生
娑婆
旣知花藏迷生卽悟正
覺 敬造九層
石塔一坐永充供養
大平二年四月日謹記

불제자 고려국(高麗國) 중주(中州) 월악산(月岳山) 사자빈신사(獅子頻迅寺)의 동량(棟梁)은 삼가 받듭니다. 대대로 성왕(聖王)께서 항상 만세(萬歲)를 누리시고, 천하가 태평해지고, 법륜(法輪)이 항시 전해져서, 이 세상 다른 지방에서 영원히 원적(怨敵)이 소멸된 이후 우연히 사바세계에 태어나서, 이미 화장미생(花藏迷生)을 알았으니, 곧 정각(正覺)을 깨우칩니다. 삼가 공손히 9층 석탑 1좌를 조성하여 영원토록 공양하고자 합니다. 태평(太平) 2년(1022년, 현종 13년) 4월 일에 삼가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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