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풍향교에서... 문화·유적

- 현풍향교 명륜당


풍향교는 현풍면사무소에서 북동쪽으로 약 500m쯤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동재, 서재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쪽에 강학 공간이, 뒤쪽에 문묘(文廟) 공간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양식을 취했습니다.

명륜당은 강학 공간에 있는 건물입니다.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집입니다. '명륜당(明倫堂)'이라 쓴 현판 글씨는 한석봉이 쓴 것입니다.

- 김광태기적비


현풍향교가 언제 세워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원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습니다. 그 후 현감 이영도(李詠道)가 구
(舊) 교동(校洞)에 중건하였고, 영조 때 현감 김광태(金光泰)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습니다. 1901년에 중수하였고, 1931년에는 다시 중수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명륜당 앞쪽에 동재와 서재가 있습니다. 서재 앞에 서 있는 비석은 김광태기적비(金光泰記績碑)입니다. 김광태는 영조 때 향교를 지금의 장소로 옮겨 지은 사람입니다.
- 대성전

대성전은 문묘 공간에 있는 건물입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집입니다.

이곳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의 위패를 모셨는데,
5성(五聖)과 송조 4현(宋朝四賢)을 배향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성전 앞쪽에 동무와 서무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을 배향하였습니다.
- 대성전 내부 (왼쪽: 공자 위패, 오른쪽: 손 씻는 세숫대)


대성전 내부의 모습입니다. 정중앙에 공자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양옆의 벽면에 다른 성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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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례석과 석탑 부재

이곳에는 다양한 탑재들이 있습니다. 향교에 웬 탑재냐고요?

당시 이곳에 향교를 지을 때 부근 절터에 있던 탑재들을 가지고 와서 사용했습니다. 소위 재활용을 하였습니다. 멀쩡한 탑을 무너뜨려서 썼는지, 아니면 무너진 것을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러 부재가 쓰였습니다. 그것도 주로 대성전에 쓰였습니다.

먼저 대성전 기단을 살펴볼까요? 연꽃무늬가 새겨진 배례석도 눈에 띄고, 안상무늬가 큼직하게 새겨진 탑의 기단 면석도 눈에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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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 하대석과 석탑 부재

어디 그뿐인가요? 대성전 건물의 주춧돌로도 쓰였습니다. 주춧돌 가운데 석등 하대석도 있고, 석탑 부재도 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공자를 비롯한 옛 성현들을 모신 곳에 부처님을 상징하는 석탑 일부를 사용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당시 불교를 멸시했던 유림들로서는 이런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겠지만, 좋게 볼 수는 없는 일이지요. 잘 모르긴 해도 옛 성현들께서도 이렇게 가르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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