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전) 북명사지 석탑재 문화·유적

- (전) 북명사지 석탑재


주시 내남면 명계리(椧溪里)에 홈실마을 있습니다. '명계(椧溪)'는 홈통 '명(椧)'과 시내 '계(溪)'를 따서 붙여졌고, '홈실'이라는 지명은 동네 입구에 좌우로 산이 가려져 마을 모양이 마치 홈에 물이 흐르는 형상과 같다고 하여 붙여졌습니다. 홈실마을 앞에 탑거리 또는 탑리라는 곳이 있습니다. 전하는 말로는 '북명사(北椧寺)'가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동경잡기>에 북명사에 대해 설명하기를 "부의 남쪽 30리에 있다. 지금은 여염(閭閻)이 되었다. 속칭 '명곡(椧谷)'이라 하는데, 석탑이 아직도 남아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책은 경주부윤 남지훈(南至熏)이 첨보(添補)하여 1711년(신묘년)에 재간(再刊)하였습니다. 책 내용을 보아 그 당시 이미 절은 폐사되었고, 그곳에 민가가 들어섰음을 알 수 있습니다.

300여 년 전의 사정이 그러했으니 지금
에서
절터의 흔적을 찾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당시에는 있었던 석탑마저도 무너져 없어졌고, 다만 깨어진 석탑재만이 밭 한쪽에 버려져 있습니다.
- 지붕돌


예전에
이곳에 탑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을 탑거리 또는 탑리라고 합니다.

그랬는데, 그때가 일제강점기 때였지요? 동네 청년들이 저녁 무렵 바깥출입을 할 때 대나무숲과 어울려 허깨비 같이 보인다고 하여 탑을 무너뜨린 후 탑재를 깨어서 각자 집에 사용할 만큼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 주춧돌

당시 이곳에는
주춧돌도 꽤 있다고 합니다. 이들 주춧돌은 집과 정자를 지을 때 가져가 썼고, 일부는 외부 상인들이 와서 사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방치되어 있다가 개울 제방 등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마을 앞으로 도로가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경주군에서 문화재 상태를 파악하면서 제방 등에 사용되었던 것을 회수하여 지금의 장소에 모아 두었습니다.

- 지붕돌


이곳 석탑재는 기단 면석과 지붕돌 등입니다. 이것들은 돌무더기와 잡풀과 뒤섞여 있어 제대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밖으로 드러난 지붕돌을 보면 그 크기가 꽤 큽니다. 지붕돌의 층급받침은 단정한 모습이며, 5단입니다.

- 기단 면석


이곳 기단 면석입니다. 모서리기둥과 가운데기둥이 새겨져 있습니다.

- 기단 면석


다른 기단 면석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탑재들로 볼 때 탑은 3층 석탑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 하대에 조성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전) 북명사지 석탑재


석탑재를 쌓아 놓은 이곳은 예전에는 낮은 지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변을
메우면서 지금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몸돌과 지붕돌 등이 땅속에 묻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 땅속에는 또 다른 석탑재가 더 있다는 말이 됩니다. 만일 있다면 어떤 게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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