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을 끈 경북대 야외박물관 전시물 2점

- 석불좌상


북대 야외박물관에 있는 석불좌상입니다.

원래는 불대좌와 광배를 고루 갖춘 불상인데, 지금은 불대좌의 중대석과 하대석은 없어졌습니다. 불상도 머리는 없어졌고, 몸체만 남았습니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하였습니다. 광배는 위쪽 일부가 깨어졌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여래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앞쪽만 보면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불상입니다.

- 광배 뒷면의 불상


이제 광배 뒷면을 한번 보십시오. 이곳에 또 다른 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처럼 광배 뒷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배면불(背面佛)이라고 합니다. 이런 배면불은 그다지 많지 않은데, 약사여래좌상이 배면불로 있는 경주 보리사 석조여래좌상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남원 만복사터 석조여래입상(여래입상), 밀양 무봉사 석조여래좌상(약사여래좌상), 선산 궁기동 석불좌상(여래좌상), 영암 월출산 우왕골 양면불(여래좌상), 김해 초전리 석불(여래좌상), 곡성 당동리 석불좌상(여래좌상), 안강 근계리 석불입상(석탑과 여래좌상), 전북대 박물관 봉림사지 석조삼존불(승상) 등이 있습니다.
- 입마시 정전방금 절목비


다음은 '입마시 정전방금 절목비(立馬時情錢防禁節目碑)'라는 긴 이름을 가진 비입니다. 이 이름만 보아서는 어떤 목적의 비인지 쉽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럼 먼저 비의 이름부터 간단히 풀어볼까요?

'입마(立馬)'는 관아 일을 위해 쓸 말을 민간에 기르도록 맡기는 것을 말하고, '정전(情錢)'은 뒷돈을 말합니다. 그리고 '방금(防禁)'은 방지하고 금지함을 말하고, '절목(節目)'은 필요한 조치들을 사례별로 열거한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비는 관아 일을 위해 쓸 말을 민간에 기르도록 맡기는 일과 관련하여 뒷돈이 오가는 악습을 방지하고 역제(驛制)를 정상화시키는 조치들을 사례별로 열거한 비입니다.

- 비명


비의 첫머리에 '입마시 정전방금 절목(立馬時情錢防禁節目)'이라고 쓴 글자를 볼 수 있습니다.

비의 내용에 '값을 치러주다'를 上下로, '은, 는'은 段으로, '씩'을 式으로, 이두식 표현을 섞어 쓴 것이 특이합니다. 그리고 비의 내용 가운데 나오는 '임오(壬午)'란 글자로 미루어 보아 1762년 또는 1822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는 조선시대 범어역(泛魚驛)이 있었던 지금의 대구여고 자리에 있던 비인데, 1970년에 옮겨왔습니다.
- 뒷면이 재활용된 비


비의 뒷면입니다.

이곳에는 큰 글자로 '이방 정건학 유공불망비(吏房鄭建鶴有功不忘碑)'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작은 글자로 '權衡鈴閣/乃除民瘼/視事有方/能達朝章/與滞補廢/俾也??/遺惠傳康/山水共長'라고 적혀 있습니다. 한문 실력이 짧아 그 뜻은 모르겠으나 아마도 이방 정건학의 행적을 칭송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내용은 '입마시 정전방금 절목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들입니다. 그냥 이방의 공덕비입니다. 그러니까 앞뒤 두 면이 서로 다른 용도로 쓰인 특이한 비입니다. 19세기 말에 이렇게 재활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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