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백세각 문화·유적

- 성주 백세각

세각(百世閣)은 성주 고산마을에 있습니다. 이 건물은 조선 전기의 문신 야계(倻溪) 송희규(宋希奎, 1494~1558)가 지은 것으로, 명종 6년(1551년)에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되었습니다.

송희규는 사헌부 집의(執義)로 있을 때 당시 세도가 윤원형(尹元衡)의 행패를 탄핵했다가 직에서 물러났고,
1547년에 일어난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전라도 고산(高山, 지금의 완주)에서 귀양살이하였습니다. 귀양살이 후 고향에 돌아와 이 건물을 지었습니다. 이곳의 마을 이름이 원래는 고산(孤山)이었는데, 귀양살이 후 돌아와 고산(高山)으로 고쳐 불렀다고 합니다.
- 사랑채


건물의 규모는 앞면 7칸, 옆면 7칸입니다. 배치는 앞쪽에 사랑채를, 뒤쪽에 안채를 두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자형 배치를 하였습니다.

이 건물은 3·1운동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공산(恭山) 송준필(宋浚弼)을 위시한 유림들이 3·1운동 때 성주장날에 배포한 독립청원서 3,000장을 만들었고, 경북 유림단 파리장서 사건을 모의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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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바깥쪽 뒷면

안채 바깥쪽 뒷면의 모습입니다. 이곳의 닫혀 있는 판문을 열면 바로 안채 대청마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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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바깥쪽 옆면

안채 바깥쪽 옆면의 모습입니다.
- 안채


안채의 모습입니다.

안채는 마당보다 꽤 높게 있습니다. 기단에 나 있는 돌계단을 통해
마당에서 안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안채의 정면은 대청마루로 되어 있고, 그 양옆에 옆채가 붙어 있습니다. 이곳에 방과 부엌 등이 있습니다.
- 안채의 양 옆채


안채의 한쪽 옆채에는 부엌과 곳간채 위로 다락방이 2층 방처럼 있고, 이곳에 오를 수 있도록 계단과 그리고 난간을 두었습니다. 이곳 2층 다락방이 1919년 파리장서 사건을 모의했던 곳입니다.
- 문간채의 여닫이 방문


문간채 한쪽에 여닫이 방문이 있습니다. 이곳 아래쪽 문틀이 재미있습니다. 자꾸 눈길이 갑니다.
- 안채 내부 모습


더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안채 방을 들여다봅니다. 빠끔히 열린 방문을 통해 오후 햇살이 살며시 비춰듭니다.

부엌 안은 어떨까요? 시래기 묶음이 줄에 걸려 있고,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연기가 잘 빠져나가도록 한쪽 위가 훤하게 뚫려 있습니다. 이 틈으로도 오후 햇살이 비춰듭니다.
- 안채 마당에서 대문 쪽으로 나가는 쪽문


안채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앞쪽을 바라봅니다. 안채 마당에서 대문 쪽으로 나가는 쪽문이 마주 보입니다.

여인들의 바깥출입이 어려웠던 조선시대에 이곳 여인들은 안채 마당의 이 좁은 공간을 오가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평소 그녀들이 볼 수 있었던 바깥세상은
이곳 대청마루에 서서 바라보는 지붕 너머의 손바닥만 한 하늘이 다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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