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손중돈·권기 목사 선정비 문화·유적

- 상주 손중돈·권기 목사 선정비


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여러모로 재미있는 석비가 있습니다. 손중돈·권기 목사 선정비(孫仲暾·權祺 牧使 善政碑)가 그것입니다.

이 석비는
이수와 비신, 그리고 귀부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원래는 무양동 189번지 개인 집의 앞마당에 있었는데, 1973년에 상주교육청 교육관 옆으로 옮겨졌다가 그 후에 다시 이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이수는 위쪽 일부가 잘려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이수 가운데에 제액(題額)이 있지만, 명문은 없습니다. 비신의 앞면 위쪽에는 해서체로 '선정비(善政碑)'라 새겨져 있고, 그 밑으로 오른쪽에 손중돈(孫仲暾) 목사의 비문이, 왼쪽에 권기(權祺) 목사의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신 하나에 목민관 2명의 치적이 새겨져 있습니다.
- 비신 뒷면

비신 뒷면에는 '皇明 嘉靖 二十四年 五月 日 立'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명나라 연호인 가정(嘉靖) 24년, 즉 조선 인종 원년(1545년)에 세워졌습니다. 현존하는 상주 지역 목민관의 석비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습니다.
- 귀부 머리


귀부는 두 눈이 부리부리하고, 이빨과 귀밑털 등에도 생동감이 있습니다.
- 귀부


귀부의 귀갑문은 흐트러짐이 없이 단정합니다. 네 발의 발톱도 뚜렷하고 사실적입니다.
- 이수와 비신 받침


이수에 새겨져 있는 용의 모습은 어떤가요? 이것 역시 세밀하면서도 사실적입니다. 귀부와 이수는 조선시대 것으로는 도저히 보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납니다. 그러면 먼저 이수의 아랫면을 한 번 보시죠.

이수 아랫면에 있는 홈의 형태나 크기가 비신과 맞지 않습니다. 또한, 귀부 윗면의 비신 받침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이세요? 비신과 그 크기가 맞지 않아 연꽃무늬가 새겨진 석재를 덧대었습니다.

이것은 선정비를 세울 당시에 비신만 새로 만들었고,
귀부와 이수는 이전에 다른 용도로 쓰였던 것을 다시 썼음을 말합니다. 이 귀부와 이수는 원래 고려시대의 부도비 등에 쓰였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손중돈·권기 목사 선정비


그러면 비의 주인인 손중돈과 권기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손중돈은 아버지 손소가 경주 양동에 정착한 후 지은 서백당(書百堂)에서 태어났습니다.
회재 이언적이 그의 외조카입니다. 1506년에서 1509년까지 상주목사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어 의성군 단밀면에 생사당(生祠堂)이 세워졌습니다. 벼슬은 판서, 도승지, 관찰사를 거쳐 우참찬을 지냈습니다.

권기는 1537년에 상주목사에 부임하였으나 이임 연도는 알 수 없습니다. 상주목사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공정하고 맑은 정치로 백성들이 그의 깨끗하고 근신함에 복종하였습니다. 벼슬은 상주목사와 경주부윤을 거쳐 좌승지를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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