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근석을 닮은 남장사 돌장승 문화·유적

- 남장사 돌장승

주 남장사(南長寺)로 가다 보면, 일주문으로부터 600m쯤 떨어진 길가에 돌장승 하나가 제일 먼저 길손을 맞습니다. 그 모습이 창녕 관룡사나 나주 불회사의 돌장승에 견줄 만큼 해학적으로 생겼습니다.

이 돌장승은 몇 년 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 변함이 없습니다. 원래는 일주문에서 300m쯤 떨어진 길 오른쪽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1968년에 그 아래쪽에 저수지가 생기면서 지금의 장소로 옮겨왔습니다.
- 남장사 돌장승


돌장승은 짐짓 무서운 표정들을 짓고 있습니다.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왕방울 눈, 뭉뚝한 주먹코, 꽉 다문 일자형의 입술, 그 아래로 삐죽이 튀어나온 송곳니, 그리고 턱밑에 고드름처럼 달린 수염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제멋대로 생겼습니다. 너무나 못생긴 얼굴에 웃음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래서 오히려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 몸통의 명문

몸통에는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과 '임진 칠월 입(壬辰 七月 立)'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임진년은 1892년, 1832년, 1772년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그 가운데 1832년에 남장사 법당을 새로 세우는 등 불사를 한 기록이 있어, 1832년에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과 함께 세워진 것으로 짐작됩니다.

- 남장사 돌장승


돌장승은 길죽하고 울퉁불퉁한 자연석을 다듬어 얼굴만 간략하게 새겨놓았습니다. 그 모습이 아들을 바라는 여인네의 기원을 담은 남근석(男根石)과 닮았습니다. 마을 동구의 입석(立石)이라면 모를까 사찰의 호법 장승으로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왜 그랬을까요? 당시
지배층으로부터 배척당한 불교는 토속신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민중 속에 뿌리내리려 했습니다. 남장사 돌장승도 이런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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