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부사 이택수 선정비 문화·유적

- 동래부사 이택수 선정비


을에 세워져 있는 선정비와 같은 비석들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별로 가치 없는 돌덩어리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비들이 당시 사회상을 이해하는 데에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부산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부사이공택수만세불망비(府使李公澤遂萬世不忘碑)'가 그런 경우입니다.

이 선정비는 원래 당시 왜관(倭館)이 있었던 동구청 부근에 있었습니다. 이택수(李澤遂)1773년 8월~1774년 6월에 동래 부사로 있었습니다. 비는 조선 영조 50년(1774년) 3월에 하급 역관이던 소통사(小通事)들이 왜관 수리 시작한 그를 위해 세웠습니다. 선정비는 대개 수령이 교체되고 난 후에 세워졌는데, 이 비는 이렇게 재임 기간에 세워졌습니다.
- 이수


비의 이수는 비신과 한 돌로 되어 있습니다. 이수 꼭대기에는 보주 모양이 장식이 있고, 앞면에는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꽃문양이 있습니다. 이 문양은 커다랗고 둥근 꽃송이가 가지 양쪽에 매달려 있는 모습입니다.

- 비문 일부


이 비는 소통사 명의로 세워진 부산지역에 현존하는 유일한 비입니다.

비문 첫머리에 '화관보간(和舘補幹)'이란 글자가 있습니다.
부산관(釜山) 등으로 불렸던 왜관을 '화관(和館)'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료에서 화관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예는 매우 드뭅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숙종 21년(1695년)과 순조 9년(1809년) 2건만 확인됐을 정도입니다.

이 비는 지방 수령의 선정비입니다. 그럼에도
왜관을 일본 측 용어인 화관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소통사들이 일본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즉 소통사와 일본 측과의 공생관계 정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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