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독서당 문화·유적

- 경주 독서당


일신라시대 말에 살았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높은 학문과 문장력을 지녔으나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자기 뜻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깊은 좌절을 안은 채 살다 갔습니다. 그가 태어난 경주에는 그와 관련된 곳이 두 곳 있습니다. 독서당(讀書堂)과 상서장(上書莊)이 그곳입니다.

독서당은 낭산(狼山) 서쪽 자락에 있습니다. 이곳은 최치원이 살았던 집터로 알려졌습니다. 경주 읍지인 <동경통지(東京通志)>의 '권상 단묘조(卷上 壇廟條)'에 낭산서당(狼山書堂)이라 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在府東排盤狼山上 崔致遠讀書堂 後孫隨毁修補 (재부동배반낭산상 최치원독서당 후손수훼수보)
至今翼然 遠壓城市 府
■瞰平野 (지금익연 원압성시 부면감평야)


내용은 대략 최치원의 독서당이 시내 동쪽 낭산에 있는데, 훼손되어 후손들이 보수했다는 것입니다.
- 독서당에서 바라본 모습


독서당은 나지막한 언덕바지에 있습니다. 그래도 이곳에 서면, 일대가 한눈에 바라보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들판에 삼층석탑 하나가 있습니다. 미탄사터 삼층석탑입니다. 최근
이곳에서 '미탄(‘味呑)'이라 새겨진 기왓조각이 여러 점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이 미탄사터일 것으로 그동안 추측은 해왔지만, 이 명문 기왓조각의 발견으로 미탄사터로 확인되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신라시조 혁거세왕(新羅始祖 赫居世王)'에 "최치원은 바로 본피부(本彼部) 사람이다. 지금은 황룡사 남쪽 미탄사 남쪽에 옛터가 있다고 한다. 이곳이 바로 최후(崔侯)의 옛집임이 분명하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독서당은 미탄사터 바로 동남쪽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곳이 최치원의 옛 집터임을 알 수 있습니다.
- 독서당


지금의 건물은
4칸 집에 팔작지붕을 취하였습니다. <동경통지>의 기록에도 있지만, 후에 건물의 보수가 있었으며, 주춧돌의 형태도 제각각입니다. 이런 것들로 보아, 건물의 원래 모습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건물 앞면에는 현판 하나 걸려 있지 않습니다. 예전에 '독서당(讀書堂)'과 '학사루(學士樓)'라 쓴 현판이 건물 앞면에 걸려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지금은 보이질 않습니다.
- 섬돌


독서당 마루 바로 앞에 섬돌이 놓여 있습니다.

이 섬돌 가운데 하나는 그 윗면에 2단의 받침이 있고, 고맥이 흔적도 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원래 건물 기둥 주초나 대문 기둥의 주초로 썼던 돌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이 섬돌은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다른 곳에서 있던 것을 가져온 것으로 짐작됩니다.
- 독서당 유허비

독서당 담장 밖에는 건물과 이웃하여 비각 속에 비가 있습니다. 독서당과 관련된 유허비입니다.

비의 앞면에는 크고 붉은 글자로 '문창후최선생독서당유허비(文昌侯崔先生讀書堂遺墟妃)'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비는 조선 철종(哲宗) 원년(1850년) 3월에 세워졌습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