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대율리 대청

- 군위 대율리 대청


위에 있는 대율리(大栗里)는 한밤마을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곳은 율리(栗里), 율촌(栗村), 일야(一夜), 대야(大夜)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 속에 마을 내력이 들어 있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처음 이곳에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사람은 신천강씨
(信川康氏)들이었고, 그때 마을 이름이 '일야'였습니다. 950년경 부림홍씨(缶林洪氏)의 입향조인 홍란(洪鸞)이 이사해 오면서 '대야'로 고쳤고, 1390년 무렵 홍씨의 14대손 홍노(洪魯)가 마을 이름에 '밤 야()'가 좋지 않다고 '밤 율()'자로 바꾸었습니다.

이곳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대율리 대청(大栗里 大廳)이 있습니다.
일설에 이 일대는 모두 절터였고, 대청이 있는 곳은 대종각(大鐘閣) 자리였다고 합니다.

- 대율리 대청


대청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입니다.

원래 조선 전기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건물이 소실되었습니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인조 10년(1632년)에 중창된 학사(學舍)입니다. 효종 2년(1651년)과 숙종 32년(1706년)에 각각
중수한 바 있으며, 1992년에 건물을 완전히 해체하여 싹은 부분과 기와를 교체하고 기단을 보수하였습니다.
- 대들보에 적힌 묵서명


일부가 지워져 잘 보이질 않지만, 대들보에 묵서명이 있습니다.

먼저 '가경(嘉慶)'이란 글자가 눈에 띕니다. 이 연호는 1796년에서 1820년까지 25년간 쓰였던 청나라 연호입니다. 그리고 함풍(咸豊) 6년 병진(丙辰) 6월 27일, 즉 1856년 6월 27일이란 글자도 있습니다. 이 날짜들은 건물 수리와 관련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건물 내부

지금 바닥은 전부 우물마루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방이 훌훌 트여 있습니다. 하지만 중창 당시에는 가운데 마루를 두고 양옆에 방을 둔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한밤마을 돌담길


한밤마을은 돌담치레가 유난스런 동네입니다.

이곳 돌담장은 마을 좌우로 비껴가는 개천에 지천으로 널린 냇돌을 주워 솜씨대로 쌓아 올렸습니다.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는 돌담장은 옛것은 옛 모습대로 새로 손본 것은 그것대로 정겹습니다. 수십 채 고가 사이로 휘어지고 이어지면서 때로는 호박 덩굴이 기어오르기도 한 돌담장은
잠시나마 옛 추억 속으로 몰고 갑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