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사 자진원오국사 부도 문화·유적

- 대원사 자진원오국사 부도

광사 16국사 부도 가운데 보성 대원사(大原寺)에 하나 있습니다. 이 부도는 자진원오국사 부도로, 극락전 바로 옆에 있습니다.

부도는
팔각원당형 부도입니다. 네모꼴 지대석 위에
복련이 새겨진 하대석과 앙련이 새겨진 상대석이 있습니다. 몸돌에는 보살상과 사천왕상 등이 새겨져 있고, 지붕돌 낙수면에는 기왓골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금 상륜부는 원래 것은 아닌 듯싶습니다.
- 몸돌의 명문

몸돌 앞면에는 '자진원오국사정조지탑(慈眞圓悟國師淨照之塔)'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 몸돌의 범어

뒷면에는 범자(梵字)가 새겨져 있습니다.
- 자진원오국사 부도

자진원오국사(慈眞圓悟國師, 1215~1286)는 송광사 제5대 국사입니다. 그런데 그의 부도가 왜 송광사가 아닌 이곳에 있을까요?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자진원오국사비의 내용으로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비는 지금은 폐사된 고흥 불대사(佛臺寺)있었고, 송광사 제6대 국사인 충지(沖止)가 고려 충렬왕 12년(1286년)에 세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문만이 송광사에 사본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스님의 속성은 양씨(梁氏)고, 휘는 천영(天英)이며, 후에 천안(天安)으로 개명하였습니다. 8살 때에 이미 시를 지을 만큼 영민했으며, 15살 때 조계산 수선사(修禪社, 지금의 송광사)의 제2세주(世主)인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을 찾아가 스님이 되었습니다.

병신년(丙申年, 1236년)에 선선(禪選)에 응시하여 상상과(上上科)에 합격하였지만, 지팡이를 짚고 남쪽으로 유람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청진국사(淸眞國師) 몽여(夢如)가 수선사의 제3세주(世主)로서 조계종지(曹溪宗旨)를 크게 진작하자 그를 찾아가 배웠고, 그 후 진명국사(眞明國師) 혼원(混元)을 찾아가 법문을 듣고 배웠습니다.

무신년(戊申年, 1248년)에 이르러 단속사(斷俗寺) 주지로 임명되었고, 경술년(庚戌年, 1250년)에는 선원사(禪源社)의 주지로 임명되었으며, 신해년(辛亥年, 1251년)에는 보제사(普濟寺)의 주맹(主盟)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임자년(壬子年, 1252년)에 청진국사가 입적한 후 선원사의 법주(法主)로 임명되었고, 병진년(丙辰年, 1256년) 가을 수선사의 제4세주인 진명국사가 사퇴를 표명하면서 자신의 후임으로 스님을 천거하여 수선사의 제5세주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항상 사람들의 장점을 본받고, 거친 말은 입에 담지 아니하였으며, 또한 남의 장단점은 일체 말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도움에는 자비를 베풀고, 대중을 대함에는 항상 관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불사(佛事)를 많이 하였는데, 대원사와 불대사도 스님께서 중창하여 제자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스님은 청(請)을 받고 불대사에 머물 때인
병술년(丙戌年, 1286년) 2월 12일에 입적(入寂)하였습니다. "떠날 때가 다가왔으니 더는 말하지 마라. 태어남은 마치 옷을 입는 것과 같고, 죽음은 옷을 벗어 버리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그 옷을 능히 벗고 입는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말한 후 조금 있다가 "목우자(牧牛子, 지눌스님)가 말한 천 가지 만 가지가 모두 여기에 있다고 한 것을 알지 못하였는가!"라는 말을 끝내자마자 조용히 입적하였습니다. 이때 스님의 세수는 72세요, 법랍은 57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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