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화제석교비 문화·유적

- 멀리서 바라본 양산 화제석교비

동강과 화제천이 만나는 포구에 토교마을이 있습니다. 긴 나무를 걸치고 흙을 덮어 만든 다리(土橋)인 화자교(火者橋)가 있어 이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예전에 있었던 다리는 이미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부근에 비가 하나 있습니다. '화제석교비(花濟石橋碑)'가 그것입니다.
- 화제석교비

비는 자전거길 바로 옆에 있습니다. 이곳은 화제천이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가기 바로 직전입니다.
- 화제석교비

지난 1992년 수자원공사가 원동취수장을 지을 때 경부선 철도 아래쪽에서 이 비가 발견되었습니다.

비는 당시 토교마을 소재 내화양수장 옆으로 옮겨졌고, 2006년 토교에서 뻘등 간 농어촌도로가 개설되면서 토교마을 회관 부근으로 다시 옮겨졌습니다. 비는 그곳에서 그동안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주민들이 힘을 모아 지금의 장소로 비를 옮겼습니다.
- 비명

화제천을 건너기 위해 만든 흙다리(土橋)가 조선시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리가 수해로 자주 무너지자 영조 15년(1739년)에 여러 사람의 참여와 봉사로 돌로 만든 무지개다리를 만들었습니다. 이 비는 그때의 일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비는 귀접이 양식을 하였습니다. 비에는 '양산화제석교비(梁山花濟石橋碑)'란 글자가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 화제석교비

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토교(土橋)는 군 서쪽 화제(花濟)에 있는데, 이곳은 관로(官路, 옛 한양길)의 요충지이다. 여덟 동네에서 흙과 나무로 이곳에 다리를 만들었으나 간혹 장맛비로 무너졌다. 그러면 아무리 바쁜 농사철이라도 수리해야 했으므로 주민들이 힘들었다. 이에 승려 사열(思悅)이 여럿 해 시주를 모으자 1739년에 지주(地主) 박공(朴公, 박규환)이 두 사람을 감동(監董)으로 명하여 돌로 된 무지개다리를 만들게 하였다. 마침 방백(方伯) 이후(李侯, 이기진)가 순시하러 지나다가 곡물을 내어 도왔다. 40일이 안 되어 공사를 완벽하게 마치게 되어 이후로 번거로운 일이 없게 되었다. 지나는 길손들이 모두 축하하며 "양산 서쪽 주민들은 노역의 고통이 없게 됐으니 이 아름다운 일은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칭송하였다. 공역에 참석한 여덟 동네는 이천·내포·범서·화제·증산·범어·별양·어곡리 등이고, 세운 때는 건륭 4년(1739년) 기미 3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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