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보문사터의 금당터 문화·유적

- 멀리서 바라본 보문사터의 금당터

주 보문사터(普門寺址)는 신라 진산(鎭山)인 낭산과 그리고 명활산 사이에 펼쳐진 너른 들판에 있습니다.

절터는 대부분 논으로 변했지만, 당간지주와 석조를 비롯한 여러 유물이 남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이곳에서 '보문(普門)'이라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절터의 이름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문사(普門寺)는 상당한 규모를 지녔던 절로 짐작됩니다. 하지만 절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신라 경문왕 11~12년(871~872년)에 황룡사 구층목탑을 중수하였습니다. 이때 심초석에 마련된 사리공 안에서 사리함(舍利函)을 넣었습니다. 이때 넣은 사리함에 <황룡사 구층목탑 찰주본기(皇龍寺九層木塔刹柱本記)>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보문사 상좌승 (上座僧) 은전(隱田)이 도감전(道監典)으로 불사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보문사는 871년 이전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금당터

금당터의 모습입니다. 금당은 흙으로 쌓은 축대 위에 있었습니다.
- 금당터

절의 가람배치는 쌍탑일금당(雙塔一金堂) 양식을 취했습니다. 금당 앞에 목탑으로 된 쌍탑이 있었습니다.
- 금당터

금당의 규모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큰 편은 아닙니다.
- 금당터

금당 가운데에 불상을 모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자리에는 무덤 1기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 금당터의 초석

금당터의 초석들은 윗면만 편평하게 제대로 다듬었을 뿐 나머지는 대충 다듬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다소 투박해 보이는 보문사터 당간지주의 모습과도 일맥상통합니다.
- 금당터의 고막이돌

금당터의 고막이돌도 다소 거칠게 다듬었습니다. 그래도 그 투박한 멋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 고막이돌에 나 있는 쐐기 홈

투박한 모습의 고막이돌이라 그런지... 고막이돌을 서로 고정하기 위해 파놓은 쐐기 홈마저도 유난스러워 보입니다.
- 금당터

다른 절터가 그러하듯 보문사터도 겨울이 제격입니다. 가을걷이를 끝낸 너른 들판은 텅 비어 있습니다. 이때가 되어야 절터의 허허로움과 한가로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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