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대포 객사 문화·유적

- 다대포 객사

로부터 다대포는 왜구를 막기 위한 중요한 군사요충지였습니다. 조선 명종 이후 다대진(多大鎭)은 부산진(釜山鎭), 서평진(西平鎭), 두모진(豆毛鎭), 개운진(開雲鎭), 포이진(包伊鎭), 서생진(西生鎭)과 함께 경상좌도 7진의 하나로 편성되었습니다.

다대포 몰운대 내에 다대포 객사(多大浦 客舍)가 있습니다. 이 객사는 다대진첨사영(多大鎭僉使營)의 객사였다고 합니다. 객사는 조선시대 지방 관아건물의 하나로서,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보관하고, 이곳에서 지방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하여 망배(望拜)를 올렸으며, 사신의 숙소로도 이용되었습니다.
- 다대포 객사

다대포 객사는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고, 순조 25년(1825년)에 중수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원래는
지금 부산시 유아교육진흥원(다대초등학교 옛 자리) 내에 있었으며, 1970년에 지금 자리에 이건되었습니다.
- 현판

건물에는 이건 당시에 만들어 걸었던 것으로 보이는 '회원관(懷遠館)'이란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다대진첨사영 객사의 이름이 '회원관(懷遠館)'입니다.
- 다대포 객사

지금 건물은 벽체가 없이 기둥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 다대포 객사

이 건물은 객사가 아니라 첨사가 집무를 보았던 동헌인 첨사청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 근거로는 먼저 지금 건물은 객사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자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다대진 전투 장면을 기록한 <임진전란도>에 묘사된 다대포 객사는 다대진첨사영 내 가장 높은 최북단에 자리 잡았으며, 본사(本舍)를 중심으로 좌우에 익사(翼舍)를 두고 있는 전형적인 객사 모습을 하였습니다.

또한, 다대초등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아 발간한 <다대백년사>에 의하면 지금의 다대초등학교의 전신인 다대포사립실용학교가 1904년 개교 당시 다대진첨사영 내에 있던 옛 관청 건물을 수리해 교사로 활용했는데, 이 건물이 첨사청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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