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엄광사터

- 밀양 엄광사터

남 밀양시 산외면 엄광리에 '엄광사터(嚴光寺址)'로 전하는 절터가 있습니다.

엄광사터는 중산(643m) 남서쪽 자락에 있습니다. 죽촌마을 동쪽으로 난 시멘트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길가에 '힐링캠프'라 적힌 표지석이 있는데, 조금 못 미친 곳에 오른쪽으로 좁은 산길이 있습니다. 이 산길을 따라 약 200m 올라가면 남원양씨 밀직공파 후손 묘역이 있습니다. 묘역이 있는 일대가 엄광사터로 알려진 곳입니다.
- 엄광사터

이곳은 기존 조사자료에 기단석, 지붕돌, 15m가량의 석축, 우물지 등의 유구와 사방격자문의 기왓조각 등의 유물이 확인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2011년 보고서에는 조사지역이 묘역과 경작지 등으로 변모되어 절터의 흔적은 확인할 수 없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곳은 2009년에 남원양씨 묘역이 들어서면서 묘역 정비를 위해 원래 지형을 깎아서 편평하게 만들어 지형 대부분이 심하게 변형되었고, 절터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묘역 주변은 덩굴식물과 숲이 우거져 있어 살펴보기가 어렵습니다.
- 멀리서 바라본 엄광사터

엄광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엄광사는 '부(府)의 동쪽에 있다.'는 기록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범우고(梵宇攷)>에는 '실혜산에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해동지도(海東地圖)>, <동여도(東輿圖)>, <여지도(輿地圖)>에 산외면의 옛 지명인 중초동면 남쪽에 '엄광사'가 표기되어 있습니다.

엄광사의 정확한 창건과 폐사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관련 기록을 통해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절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죽촌마을 골목에 세워진 석탑재와 치석재

엄광사터에 남서쪽으로 약 600m 떨어진 곳에 죽촌마을이 있습니다. 이 마을의 골목길에 석탑재와 치석재가 있습니다. 이 석탑재와 치석재는 엄광사터에 있던 것이라고 합니다.
- 석탑재와 치석재

좀 더 가까이에서 본 모습입니다. 하나는 석탑재이고, 다른 하나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치석재입니다.
- 석탑재

석탑재의 모습입니다. 하층기단 일부로, 하대저석과 면석이 하나의 돌로 되어 있습니다. 기단 면석에는 모서리기둥과 1개의 가운데기둥이 있습니다.
- 광산재

죽촌마을 남쪽에 광산재(光山齋)가 있습니다. 이 재실은 안동손씨의 재실입니다.

- 밀양시립박물관의 대좌

엄광사터와 관련된 것으로 전하는 유물이 밀양시립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습니다.

먼저 대좌편 2매입니다. 대좌편은 상대석과 하대석으로 추정되며, 영원사터 및 다른 지역에서 가져온 석조유물과 함께 쌓여 있습니다. 이 대좌편은 앞서 언급한 광산재의 주춧돌로 사용되었던 것을 밀양시립박물관 개관시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
- 대좌

위쪽 대좌편은 하대석으로 추정되며,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8엽의 복판복엽의 연판문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아래쪽 대좌편은 대좌의 상대석으로 절반만 남아 있고, 뒤집혀 있습니다. 이중연화문으로 장식되어 있고, 각 연판에 엽문이 있습니다. 뒤집혀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대좌 윗면에 불상의 부채꼴형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들 대좌편은 통일신라 9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며, 같은 대좌의 부재인지는 불명확합니다. 하지만 모두 불상대좌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석탑재

대좌편 옆에 석탑재가 있습니다. 지붕돌과 몸돌로, 엄광사터에 있던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엄광사터에 있던 것이라는 이야기에 이들 석탑재 가운데 일부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전부를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위쪽 지붕돌은 탑의 가장 위층의 지붕돌로, 윗면에 1단 받침과 찰주공이 있고, 아랫면에 4단 층급받침과 절수구가 있습니다. 아래쪽 지붕돌은 윗면에 2단 받침과 아랫면에 4단 층급받침이 있으며, 절수구는 없습니다. 이 두 지붕돌은 서로 다른 탑의 지붕돌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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