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문화·유적

-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몇 안 되는 백제시대 석탑입니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귀중한 탑입니다.

백제가 망한 후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이 탑에 백제를 평정한 사실을 기록한 기공문(紀功文)을 새겨 놓았습니다. 그래서 '평제탑(平濟塔)'이라 하기도 했습니다. 씁쓸한 일이지만 이 기공문 덕분에 탑이 오늘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일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 기단부

기단부 모습입니다. 목조 건물의 기단과 비슷한 형태입니다.

여러 개의 장대석으로 지대석을 만들고, 그 위에 기단을 놓았습니다. 기단은 단층기단으로, 2단의 높은 받침 위에 면석이 놓여 있습니다. 면석의 높이는 낮고, 면마다 모서리기둥과 1개의 가운데기둥이 있습니다. 갑석은 8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탑신부

탑신부는 그 크기와 비교하면 꽤 많은 석재의 조립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도 목탑의 영향이라 할 수 있겠지요.
- 정림사지 오층석탑

몸돌 면석의 모서리기둥은 배흘림형식입니다. 그러나 2층 이상 몸돌에서는 급격한 체감으로 뚜렷하지 않습니다.

지붕돌의 낙수면은 평박하면서도 넓고, 전각에서 살짝 반전이 있습니다. 지붕돌에 목조 건물의 수법이 드러나 있는데, 두공(枓栱: 공포 부재의 총칭)을 변형시킨 받침이나 낙수면 네 귀퉁이에서의 기와지붕의 우동마루가 그러합니다.
- 정림사지 오층석탑

신라시대 석탑에 익숙한 사람에겐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여러모로 낯섭니다. 1층 지붕돌보다 폭이 좁은 기단부가 그렇고, 편평한 지붕돌이 그러하며, 지붕돌 아랫면의 받침도 그러합니다.

백제 사람들은 왜 이런 모습의 석탑을 만들었을까요?
- 일본 호류지 오중탑

일본 호류지 오중탑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탑으로, 7세기 말 아스카시대에 세워졌습니다. 백제시대의 목탑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는 탑입니다.

이제 호류지 오중탑을 한 번 보시죠. 탑을 올려다보는 시선이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올려보는 시선과 많이 닮지 않았나요?

백제 사람들은 높이 솟은 목탑을 아래에서 올려보았을 때의 모습대로 석탑을 만들었습니다. 목탑의 실제 모습보다는 눈에 비치는 모습이 더 중요했던 모양입니다. 석탑을 만드는 데 있어 신라 사람들과는 전혀 다르게 생각한 거죠. 신라 사람들이 이성적이라면, 백제 사람들은 감성적이었던 것이 아닐까요?

덧글

  • 解明 2016/09/21 08:23 # 답글

    이렇게 보니 정림사지 석탑과 호류 사 석탑 생김새가 정말 많이 닮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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