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여행: 7. 타마우돈 문화·유적

- 타마우돈 입구

리성 서쪽에 타마우돈(玉陵)이 있습니다.

타마우돈은 1501년에 쇼신왕(尚真王)이 미아기무ー이(見上げ森)에 장사지냈던 부왕 쇼엔왕(尚円王)의 유골을 개장(改葬)하기 위해 세웠습니다. 그 뒤로 왕실의 능묘가 되었습니다.
- 조감도

타마우돈은 앞문(前門)을 들어서면 넓은 앞뜰이 있고, 앞뜰을 지나서 가운데 문(中門)을 들어서면 뒤뜰과 묘실이 있습니다.
- 앞문

앞문의 모습입니다. 앞문 뒤로 가운데 문이 보입니다.
- 앞뜰과 가운데 문

앞뜰과 가운데 문 모습입니다.
- 타마우돈비

앞뜰 왼쪽에 타마우돈비(玉陵碑)가 있습니다. 이 비는 1501년에 세워졌습니다.

오키나와가 통일된 것은 1429년 중산(中山) 왕이었던 쇼하시(尚巴志)에 의해서입니다. 1469년에 중신(重臣)이었던 카네마루(金丸)가 반란을 일으켜 쇼토쿠왕(尚徳王)을 밀어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는데, 바로 쇼엔왕(尚円王)입니다. 1476년에 쇼엔왕이 사망하자 아들인 쇼센이(尚宣威)가 즉위했지만, 반년도 안돼서 실각했습니다. 그 대신 쇼센이의 배다른 형제인 쇼신(尚真, 쇼엔왕의 첩이었다가 왕비가 된 오기야카(宇喜也嘉)의 아들)이 12세 나이로 즉위했습니다. 이러한 권력 이동은 대비 오기야카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비문 내용이 있습니다.

비문에 타마우돈에 묻힐 사람으로 쇼신왕 외에 8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이것을 거스른다면 "하늘을 보며 땅에 누워 벌한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8명에는 실각한 쇼센이와 쇼센이의 딸로 쇼신왕의 정실이었던 쿄진(居仁), 쇼신왕의 장남과 차남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비문은 대비 오기야카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전하여 왕실에 권력 다툼과 애증극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 타마우돈

묘실의 모습입니다.
- 묘실 모형물

묘실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중실(中室), 동실(東室), 서실(西室)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중실에는 세골(洗骨) 전의 유해를 안치했습니다. 동실에는 세골 후의 왕과 왕비의 유골을, 서실에는 그 외 왕실 가족의 유골을 안치했습니다. 당시 류큐의 장례제도는 유해를 몇 년간 두었다가(風葬), 피부 등을 제거한 유골을 씻어 뼈를 취하였습니다(洗骨). 세골 후에 유골을 지시가미(厨子甕, 류큐・오키나와의 뼈단지)에 넣어 왕과 왕비의 유골은 동실에 안치하고, 그 외 왕족의 유골은 서실에 안치했습니다(改葬).
- 중실

중실의 모습입니다.
- 동실

동실의 모습입니다.
- 동실의 문

동실의 문입니다.
- 서실

서실의 모습입니다.
- 서실 외벽 쪽

서실 외벽 쪽의 모습입니다.
- 난간 석판

묘실 앞 돌난간에는 슈리성 정전의 돌난간과 같이 사람 짐승 새 꽃 등이 새겨진 석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 난간 석판

사자를 닮은 짐승이 새겨진 난간 석판입니다.

난간 석판 가운데 비교적 온전한 것도 있지만, 오키나와 전투의 흔적이 남은 것도 있습니다. 위의 석판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앞쪽 짐승은 원래 것이지만, 뒤쪽 짐승은 새로 복원한 것입니다.
- 오키나와 전투 후의 타마우돈

위 사진을 보면 오키나와 전투 때 타마우돈이 얼마나 큰 피해를 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미군의 폭격으로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1974년부터 3년 남짓한 복원공사 끝에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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