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사천왕사지 문화·유적

- 당간지주

핏 스쳐 지나가기 쉽지만, 경주에서 울산으로 가는 7번 국도 길가에 당간지주(幢竿支柱) 1쌍이 서 있습니다.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가 있는 곳입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문무왕 9년(669년)에 당나라 군사가 신라를 침입하려고 하자 이를 막아내기 위해 명랑법사(明朗法師)의 건의로 낭산(狼山) 남쪽 신유림(神遊林)에 절을 세우고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을 행하였습니다. 그때 신라 군사와 당나라 군사는 아직 교전하기 전인데 갑자기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서 당나라 군사의 배가 모두 침몰하였습니다. 그 후 문무왕 19년(679년)에 절을 고쳐 짓고 사천왕사(四天王寺)라고 하였습니다.

절터에는 당간지주 외에 귀부(龜趺), 목탑지(木塔址), 금당지(金堂址), 추정 단석지(壇席址: 불교의식공간)가 있습니다.
-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소박한 모습입니다. 당간지주마다 2개의 직사각형 간공과 1개의 원형 간공이 있을 뿐, 그 외 별다른 장식이 없습니다.
- 동귀부와 서귀부

절터 앞쪽에 귀부 2기가 있습니다.
- 서귀부

도로 쪽의 귀부는 서귀부입니다. 문무대왕비 귀부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서귀부

비록 머리 부분은 없어졌으나, 잘생긴 귀부입니다. 등에 새겨진 뚜렷한 육각 무늬와 덩굴무늬, 그리고 세밀하게 표현된 발가락 등을 보면 여간 정성을 들여 만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 동귀부

서귀부 맞은 편에 동귀부가 있습니다.
- 동귀부

동귀부는 서귀부와 마찬가지로 머리 부분이 없어졌습니다. 모습도 거의 같습니다. 사적비(事蹟碑) 귀부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서목탑지

금당지 앞쪽에 동서로 목탑지 있습니다. 목탑지에는 중앙에 사각형 사리공이 있는 심초석이 있습니다.

신라시대 사찰은 금당 앞에 탑을 하나 세운 일탑일금당형(一塔一金堂型)이 대부분이었으나, 통일신라시대 이후에는 금당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에 각각 탑을 세우는 쌍탑일금당형(雙塔一金堂型)으로 변모하였습니다. 목탑으로써의 쌍탑형식은 사천왕사가 처음이고, 석탑으로써의 쌍탑형식은 감은사가 처음입니다.
- 금당지에서 바라본 동목탑지

목탑지는 사각형 구조입니다. 사방에 계단이 있었고, 그 양옆의 기단부에 양지(良志) 스님이 만든 녹유신장상(綠釉神將像)이 있었습니다.
- 금당지

금당지의 모습입니다.
- 금당지

중앙에 불상을 모셨던 사각형 지대석이 있습니다.
- 서단석지

금당지 뒤쪽에 동서로 건물지가 있습니다. 단석지(壇席址)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단석지는 금당지를 가운데에 두고 동서 목탑지와 남북으로 대칭되는 곳에 있습니다. 이곳 초석은 가운데에 원형 구멍이 있고, 그 주변에 정교한 장식이 있는 특이한 형태를 하였습니다. 그 옛날 명랑법사가 문두루비법을 행하였던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요?
- 뒤쪽에서 바라본 사천왕사지

사천왕사는 '제망매가(祭亡妹歌)'와 '도솔가兜率歌)'라는 향가로 유명한 월명(月明) 스님이 있었던 곳입니다. 월명 스님은 피리를 무척 잘 불었다고 합니다. 달 밝은 밤에 피리를 불면서 사천왕사 앞길을 산책하면, 피리 소리에 달도 가기를 멈출 정도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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