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충사 삼층석탑, 그리고... 문화·유적

- 표충사 삼층석탑

충사 경내로 들어서면 돌계단으로 연결된 높은 석축 위에 사천왕문이 있습니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너른 마당 가운데에 석등과 함께 석탑이 있습니다.
- 표충사 삼층석탑

석탑은 단층기단에 삼층석탑입니다.

탑은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조금 부족합니다. 1층 몸돌이 2층과 3층 몸돌보다 지나치게 높아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륜부가 비교적 잘 남아 있고, 지붕돌에는 풍령까지 달려있어 우아한 느낌이 듭니다.
- 표충사 삼층석탑

탑은 주위의 건물과는 어울리지 못하고 왠지 혼자 겉도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법당 정면 중앙에 탑이 있는 게 일반적인데, 표충사에선 그것이 크게 어긋나 있습니다. 대홍원전(大弘願殿)이라는 승방건물이 옆에 있으나 정면 가운데에 자리한 것도 아니고, 탑 주변의 서래각(西來閣) 일원은 담장으로 가로막혀 있습니다.

탑이 다른 곳에서 옮겨왔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창건 당시의 가람배치가 후대에 이르러 많이 흐트러졌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 표충사 삼층석탑 개수탑기비, 1491년, 높이 68cm

표충사 삼층석탑 개수탑기비(表忠寺 三層石塔 改修塔記碑)는 1995년 표충사 삼층석탑을 해체 수리하던 중 기단 적심부에서 다수의 유물과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탑 속에서 발견된 유일한 비석입니다.

마모가 심하여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으나, 1491년 2월에 재약산 영정사(靈井寺: 표충사의 옛 이름)에서 탑이 기울고 위태로워 많은 스님과 사부대중이 시주하여 이를 보수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이 비문을 통해 조선시대에도 석탑을 해체 보수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 표충사 삼층석탑 사리

신라 흥덕왕 4년(829년) 인도의 고승 황면선사(黃面禪師)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와 이곳(당시 죽림사(竹林寺))에 머물 때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악성 피부병에 걸려 치료를 위해 이름난 산을 찾아다니던 중 이곳 약수를 마시고 병이 나았습니다. 이에 왕이 크게 감탄하여 탑을 세우며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절 이름을 영정사(靈井寺)로 고쳤다고 합니다.

1995년 삼층석탑의 해체보수 때 여러 유물과 함께 백자로 만든 사리함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사리함이 비어 있었습니다. 사리함이 비어 있는 이유로 임진왜란 때 왜군의 도굴에 대비해 사리를 다른 곳으로 옮겼을 것으로 추측하였습니다.

최근 두방사(杜芳寺) 다층석탑에서 사리 23과와 연기문이 발견되었습니다. 연기문에 "임진왜란 당시 영정사 3층탑에 모셔진 부처님 사리를 보호하고자 말사였던 진주 월아산 동쪽 법륜사(法輪寺)에 옮겼으나 왜군이 진주까지 밀려들자 월아산 남쪽 두방사로 다시 모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리 6과를 표충사에 다시 모셔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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