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교 이광사의 편액 글씨, '원암' 미술

- 원교 이광사의 편액 글씨

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의 편액 글씨입니다. 큰 붓으로 거침없이 '원암(願庵)'이라 썼습니다. 글씨는 어느 암자 편액으로 사용하기 위해 써준 것으로 보입니다.

이광사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1770∼1847)과 함께 조선 후기 3대 명필로 꼽힙니다. 왕실 종친의 후예인 그는 영조 즉위 후 가문이 역적 집안으로 몰리면서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과 서예에 몰두했습니다. 정제두(鄭齊斗)에게 양명학을 배웠고, 당대의 명필이었던 윤순(尹淳)에게 글씨를 배웠습니다.

그가 만 50살 때인 영조 31년(1755년)에 발생한 나주벽서사건(羅州壁書事件)에 연루되어 그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습니다. 이에 그의 부인은 절망하여 자결하였고, 그는 겨우 목숨만은 건지고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함경도 부령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진도를 거쳐 신지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23년간의 유배 생활 동안 독창적인 글씨체인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완성하였습니다.

조선시대 야사(野史)의 총서인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을 쓴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은 이광사의 장남입니다. 이긍익의 호가 '연려실(燃藜室)'인데, 이광사가 서실 벽에 붙이라고 써준 글자였다고 합니다. '연려실'은 한나라 유향(劉向)이 옛글을 교정할 때 태일선인(太一仙人)이 청려장(靑藜杖)에 불을 붙여 비추어 주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이긍익이 평생을 고난 속에 산 부친을 얼마나 흠모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원

'원(願)'자입니다.
- 암

'암(庵)'자입니다.
- 묵으로 찍은 낙관

묵으로 찍은 낙관입니다. '도보씨(道甫氏)'라 찍혀 있습니다. '도보(道甫)'는 이광사의 자(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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