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화천리 석불 문화·유적

- 경주 화천리 석불

경주 화천리(花川里)는 벽도산과 단석산 준령이 빚어낸 넓은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이 마치 꽃과 같다고 하여 꽃내, 곶내, 고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한자 표기로 화천(花川)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이곳을 지나가다 냇가에 꽃이 만발한 모습을 보고 '꽃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도 합니다.

- 도천정사

화천리의 뒷들(後坪)마을에 도천정사(桃川精舍)가 있습니다. '뒷들'이란 마을 이름은 뒤쪽에 넓은 들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도천정사는 밀양인 박응복(朴應福)을 추모하여 그 후손들이 1924년에 세웠으며, 1978년에 개축했습니다. 박응복은 임진왜란 때 의병에 참가하여 훈련원봉사(訓練院奉事: 병사를 훈련 시키는 훈련원의 종8품 말단 관직)가 되었습니다.

- 화천리 석불

도천정사 앞뜰에 모과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그 앞에 자그마한 석불이 있습니다.

- 화천리 석불

석불은 좌상입니다. 반쯤 땅에 묻혀 있습니다.

- 화천리 석불

머리는 없어졌고, 몸통만 남았습니다.

- 화천리 석불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 화천리 석불

마을 재실과 석불... 아무리 보아도 서로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석불이 원래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원래 어디에 있었으며,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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