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연사 통일대사탑비 문화·유적

- 각연사 통일대사탑비

각연사에서 칠보산 북쪽 골짜기를 따라 500m쯤 올라간 산기슭에 각연사 통일대사탑비가 있습니다. 비는 돌로 쌓은 축대 위에 있으며, 귀부 위로 비신을 세우고 이수를 얹었습니다. 

- 귀부

비는 고려 초 스님인 통일대사의 행적을 기록하였습니다. 

통일대사는 고려 초에 중국유학을 다녀온 후 왕실에서 불교 교리를 강의하자 각지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대사가 입적하자 광종은 '통일대사(通一大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당대의 문장가였던 김정언(金廷彦)에게 비문을 짓도록 하였습니다.

- 귀부 머리

귀부 머리는 용의 머리로 바뀌었습니다. 

- 귀부 머리

이처럼 귀부 머리가 거북에서 용으로 바뀐 것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로 넘어오면서 나타나는 양식상의 특징입니다.

- 귀부

귀부 등에는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비좌 옆면에 안상무늬 안의 쌍어문이 있습니다.

- 비신과 이수

비신에 해서체로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원래 새겨진 3,500자 가운데 대부분이 마모되어 위쪽과 아래쪽 일부 260자 정도만 판독할 수 있습니다. 알 수 있는 비문 내용이 적어서 당(唐)에 유학하였다가 귀국하여 태조를 만나는 등의 교화 활동을 한 사실만 알 수 있습니다.

이수 네 면에는 4마리의 용을 새겨 놓았습니다. 용들은 머리를 들어 꼭대기에 있는 보주(寶珠)를 받들고 있습니다.

- 뒷모습

비는 원래 자리에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된 몇 안 되는 부도비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성시기는 광종 9년(958년)에서 광종 11년(960년)으로 추정됩니다. 

이곳에서 뒤쪽 산기슭으로 30분 가량 올라가면 통일대사 사리를 모신 것으로 알려진 팔각원당형 부도가 있습니다. 시간이 늦어 그곳까지 갈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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