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여행: 10. 도다이지(東大寺)를 한 바퀴 돌다. 문화·유적

- 나라불상관

나라 도다이지(東大寺)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이전에 한 번 찾은 적이 있으나, 시간에 쫓겨 남대문과 대불전만 보았습니다. 

나라박물관의 나라불상관(奈良仏像館) 옆을 지나 도다이지로 갑니다. 나라불상관은 나라 시대~가마쿠라 시대의 불상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건물은 나라 지역에서 최초로 지어진 서양식 건물로, 1894에 완성되었습니다.

- 도다이지 남대문의 돌사자상(암사자상)

도다이지(東大寺)는 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절입니다. 동쪽의 큰 절이라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듯이 서쪽에 사이다이지(西大寺)라는 큰 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도다이지와는 규모에서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절의 정문은 남대문(南大門)입니다. 높이가 25m를 넘어, 일본 최대의 산문(山門)입니다. 남대문 뒤편에 돌사자상이 있습니다. 

돌사자상은 일본에 가장 오래된 석상(石像)입니다. 일본에 초청된 중국 남송의 석공인 이쿄마츠(伊行末)에 의해 1196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돌사자상은 암수 1쌍인데, 암사자상의 머리에 갈기가 있습니다. 당시의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실제 사자를 본 적이 없어서 이런 모습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 중문 사천왕상(다문천왕)

대불전 앞에 있는 문이 중문(中門)입니다. 중문은 1716년에 재건되었다고 전합니다. 중문 양측에 지국천왕과 다문천왕이 있습니다.

- 세부

사천왕상은 대부분 악귀를 밟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의 다문천왕은 여신의 손바닥을 밟고 서 있습니다. 그런데 여신의 표정을 보시죠. 육중한 다문천왕을 손바닥에 올려놓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입니다. 놀랍지 않나요?

- 대불전

대불전(大仏殿)입니다. 

대불전은 처음 세워진 이후로 2차례 소실되어 가마쿠라 시대와 에도 시대에 재건되었습니다. 2차례 재건으로 처음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세계 최대급의 목조 건축물이며 예전의 웅장함이 남아 있습니다.

- 타무케야마 하치만구

도다이지 동쪽 끝에 타무케야마 하치만구(手向山八幡宮)가 있습니다. 이 신사는 도다이지 건립 때 창건되어 1691년에 재건되었습니다.

- 신보전

신사의 신보전(神宝殿)입니다. 

원래는 지금의 식당지(食堂跡) 부근에 있었는데, 1714년에 지금의 장소로 옮겨졌습니다. 건물은 법화당(法華堂) 경고(経庫)와 같은 형태로, 창고 형태입니다. 두 건물 모두 나라 시대 건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어발탑

법화당 경고 바로 남쪽에 어발탑(御髪塔)이 있습니다.

이 석탑을 어발탑(御髪塔)라고 부르는 것은 쇼무 천황(聖武天皇)이 스스로 출가할 때 자른 머리카락을 넣었다는 전설 때문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13층이나 지금은 12층까지 남아 있습니다. 석탑의 건립 시기에 대한 기록이 없어 정확한 시기를 알 수는 없으나, 가마쿠라 시대의 전형적인 십삼층석탑 형태를 하였습니다.

-법화당 경고

법화당(法華堂) 경고(経庫)입니다.

이 건물은 원래는 정창원의 근처에 있었다고 합니다. 가마쿠라 시대에 대규모 수리가 있었고, 에도 시대에 지금의 장소로 옮겨졌습니다.

- 삼월당

법화당 경고 북쪽에 삼월당(三月堂, 또는 法華堂)이 있습니다.

삼월당은 도다이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도다이지 창건 이전에 있었던 킨쇼지(金鍾寺) 법당의 유구(遺構)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음력 3월에 법화회(法華会)가 이루어져 삼월당 또는 법화당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원래는 정당(正堂)과 예당(礼堂)이 처마를 맞대어 배치되어 있었는데, 가마쿠라 시대에 예당을 개축하여 정당과 이어졌습니다. 정당은 덴표 시대(天平時代, 729~748년) 초기의 건물이고, 예당은 가마쿠라 시대의 건물입니다.

- 사월당

삼월당 맞은편에 사월당(四月堂, 또는 三昧堂)이 있습니다.

1021년에 인선대법사(仁仙大法師)와 조경(助慶) 스님이 법화삼매(法華三昧)를 할 때 세워졌다고 하여 사월당(四月堂) 또는 삼매당(三昧堂)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건물은 1681년에 재건된 건물입니다.

- 이월당

삼월당 북쪽에 이월당(二月堂)이 있습니다.

이월당이란 이름은 음력 2월에 오미주토리(お水取, 새벽 2시경에 당집 옆 우물에서 1년 동안 불단에 올릴 물을 긷고, 큰 횃불을 밝혀 당집을 돎; 이 물을 마시면 병이 낫는다 함), 즉 수이회(修二会)가 이루어졌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합니다. 

건물은 1180년과 1567년, 2번의 전화(戦火)로 불탔고, 1667년에 오미주토리 도중에 실화로 불탔으나 2년 후에 재건되었습니다. 그때 재건된 것이 지금의 건물입니다.

- 이월당에서 바라본 전경

이월당에 오르면 이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왼쪽으로 사월당이, 오른쪽으로 멀리 대불전 지붕이 바라보입니다.

- 이월당에서 바라본 전경

한 무리의 사슴이 이월당 앞뜰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습니다.

- 대불지에서 바라본 대불전

이월당을 내려와 대불전 뒤쪽 길로 갑니다. 정창원으로 가는 길에 대불지(大仏池) 쪽에서 바라본 대불전 모습입니다.

- 정창원 보고

절의 가장 깊숙한 곳에 정창원(正倉院)의 정창(正倉) 1동이 있습니다. 정창원(正倉院) 보고(宝庫)입니다. 이 건물은 매우 큰 창고 건물입니다.

나라·헤이안 시대에 중앙 및 지방 관청, 큰 절에서 중요 물품을 보관하는 정창(正倉)이 세워졌는데, 정창 몇 동이 모여있는 것을 정창원(正倉院)이라 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곳에 세워졌던 정창들이 모두 없어지고 도다이지 정창원 내의 정창 1동만 남았습니다. 이것이 정창원 보고입니다. 지금 정창원 보고는 비어 있습니다. 정창원 보고의 수많은 보물은 정창원 동보고(東宝庫)와 서보고(西宝庫)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 전해문

절의 서북쪽, 정창원의 서쪽에 전해문(転害門)이 있습니다. 전해문은 크기는 남대문에 못 미치지만, 당당함은 남대문 못지않습니다.

- 전해문

전해문이 있는 곳은 직선거리로 대불전에서 500m 넘게 떨어져 있습니다. 도다이지 경내가 얼마나 넓은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전해문

전해문은 1180년 타이라노 시게히라의 병화(平重衡の兵火)와 1567년 미요시・마츠나가의 전투(三好・松永の戦い), 2번의 전화(戦火)에도 살아남은 도다이지의 몇 안 되는 건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마쿠라 시대에 수리되어 다소 변형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나라 시대의 건물입니다. 따라서 덴표 시대 도다이지의 건물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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