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개선사지 석등 문화·유적

- 담양 개선사지 석등

담양 개선사지(開仙寺址)는 덕봉산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형성된 낮은 구릉지에 있습니다.

지금은 1976년에 준공된 광주호로 말미암아 산 아래에서 올라오는 길이 물에 잠겨 광주 충효동 수리마을 쪽에서 개선동길을 따라 덕봉산 동쪽 능선을 넘어가야 합니다. 광주호가 생기기 이전에는 지금의 광주호 제방 쪽에서 개선마을을 지나 골짜기 쪽으로 올라왔습니다.

- 개선사지 석등

절터는 서쪽과 남쪽과 동쪽으로 낮은 능선으로 둘러싸여 북향하고 있고, 골짜기 위쪽 끝에 개선사지 석등이 있습니다. 석등은 높이가 3.5m로, 통일신라 시대 석등입니다.

- 석등 아랫부분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던 석등 아랫부분을 1990년~1992년에 복원하였습니다. 그때 지대석과 하대석, 간주석 일부를 새로운 석재로 교체하였습니다.

- 하대석

네모난 지대석 위에 안상무늬가 새겨진 팔각 하대하석을 놓고, 그 위에 연화대석을 놓았습니다. 연화대석에 겹잎 연꽃 여덟 장을 엎어 새기고, 꽃잎 끝마다 8개의 귀꽃을 세웠습니다. 여기까지는 복원할 때 보완한 모습으로, 원래 모습은 손상되어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 하대석의 귀꽃

하대석의 귀꽃 모습입니다.

- 간주석

하대석 위에 간주석이 있습니다. 그 형태가 통일신라 후기 전라도에서 유행했던 장고 몸통 모양(鼓腹形)입니다. 가운데에 둥근 원판을 두고, 그 위아래 위에 복련(覆蓮)과 앙련仰蓮)이 새겨진 쟁반 모양의 부재가 마주 보고 있습니다.

- 상대석

간주석 위에 여덟 장의 앙련이 새겨진 상대석이 있습니다.

- 화사석

화사석은 팔각형입니다. 그리고 면마다 화창이 뚫려 있습니다.

- 임실 진구사지 석등

화사석 모든 면에 화창이 뚫려 있는 석등은 고복형 간주석을 가진 석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 화사석의 명문

화창 사이의 면에 136자의 해서체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내용은 "신라 경문왕과 문의왕후, 그리고 큰 따님(후에 진성여왕)의 발원으로 승려 영판(靈判)이 당(唐) 함통(含通) 9년(868년)에 석등을 조성하였다. 용기(龍紀) 3년(891년)에 승려 입운(入雲)이 경조(京租) 일백 석으로 오호비소리(烏乎比所里)의 공서(公書)와 준휴(俊休) 두 사람으로부터 (다음과 같이) 토지를 샀다."는 것입니다. 즉, 석등의 건립에 대한 내용과 석등과 인접한 토지 매매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지붕돌

지붕돌은 귀꽃과 귀꽃사이에 얕은 전각을 마련하여 살짝 들어 올렸습니다.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지만, 16각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화창이 8개인 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 지붕돌의 귀꽃과 상륜부

지붕돌에는 전각마다 하나씩 모두 8개의 귀꽃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만 남았습니다. 지붕돌 위에 상륜부가 있습니다.

- 개선사지 석등

개선사지 석등에 관한 기록은 조선 후기 읍지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호남읍지(湖南邑誌, 1895년)와 창평군읍지(昌平郡邑誌, 1899년) 등에 "석등이 현 남쪽 5리(군 남쪽 15리) 개선동에 있고, 전하기를 삼국 시대 개선사의 것이라 한다. 높이는 1장(丈)이 넘고, 둘레는 2위(圍)이고, 층이 10급(級)인데, 8개의 문을 뚫고 조각이 극히 기괴하다. 그 면에 각자하여 이르기를 당 함통 9년 무자(戊子)년 2월에 승려 영판(靈判)이 세웠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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