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심향사 문화·유적

- 나주 심향사

까치설날인 작은 설날 아침에 찾은 심향사는 땅에 깃털이 떨어져도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합니다.

심향사(尋香寺)는 나주 금성산 동쪽 자락에 있습니다. 절은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지만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당시 이름은 미륵원(彌勒院)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려 현종 2년(1011년)에 거란군의 침입으로 현종이 나주로 몽진을 왔을 때 나라의 평안을 위해 이곳에서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1789년 무렵에는 신황사(神皇寺)로 불렸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 언제부터인가 심향사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 모과나무

미륵전 앞에 모과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데 수령이 200년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옆에 고사하여 둥지만 남은 나무는 수령이 500년 된 팽나무라고 합니다.

- 삼층석탑

미륵전 앞 너른 뜰에 석탑 2기가 있습니다. 나주 북망문 밖 삼층석탑과 또 다른 삼층석탑입니다.

- 삼층석탑

삼층석탑은 새 부재로 보완된 2층과 3층 몸돌로 다소 낯설어 보입니다. 조성 시기는 고려 시대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상륜부

상륜부 모습입니다. 노반과 앙화가 돌의 재질에 있어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 나주 북망문 밖 삼층석탑

나주 북망문 밖 삼층석탑은 나주 사람들이 '난쟁이 탑'으로 부릅니다.

탑은 이층기단의 삼층석탑입니다. 원래는 심향사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북망문 밖에 있었다고 합니다. 1915년에 옛 나주군청(지금의 금성관) 마당으로 옮겨졌고, 2006년에 금성관을 정비하면서 심향사로 다시 옮겨졌습니다. 조성 시기는 고려 초기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기단부

하층기단은 하대저석과 면석, 갑석이 하나의 돌로 되어 있습니다. 면석에는 면마다 3개의 안상무늬가 있고, 하대갑석 윗면에는 물매와 합각선이 있습니다.

상층기단 면석은 면마다 모서리기둥과 1개의 가운데기둥이 있습니다. 상대갑석은 그 일부가 깨어져서 2006년에 새로 교체되었습니다. 윗면에 하대갑석처럼 물매와 합각선이 있으며, 아랫부분의 부연은 없습니다.

- 탑신부

탑신부는 전체적으로 날렵한 느낌을 줍니다. 지붕돌 아랫면의 층급받침은 3단이며, 지붕돌 전각에서 끝이 살짝 들려 있습니다. 상륜부에는 노반과 복발이 있습니다.

- 석탑재

극락보전 옆에 있는 석탑재입니다. 지붕돌 4개입니다. 고려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석조여래좌상

미륵전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입니다. 불신과 광배가 하나의 돌로 되어 있습니다.

- 석조여래좌상

불상은 길쭉한 신체와 넓은 어깨, 네모난 넓은 무릎에서 안정감을 줍니다.

우견편단의 대의를 입은 위에 오른쪽 어깨에 별도의 편삼을 걸친 착의법과 항마촉지인의 수인 등의 특징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에 유행한 형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장방형의 얼굴과 편평한 가슴으로 볼 때 지역성이 강한 고려 전기의 불상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광배 왼쪽 윗부분은 파손된 것을 2010년에 복원하였습니다.

- 도갑사 석조여래좌상

심향사 석조여래좌상과 닮은 불상이 있습니다. 영암 도갑사 미륵전에 있는 석조여래좌상입니다.

- 건칠아미타여래좌상

극락보전에 있는 건칠아미타여래좌상입니다. 이 불상은 점토나 석고로 만든 원형을 제거한 탈활(脫活) 건칠 기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불상은 머리가 몸체에 비해 큰 편이며, 얼굴은 평면적이면서도 근엄한 인상을 줍니다. 체구는 듬직하고 균형 잡힌 편이지만, 전체적으로 앞으로 숙인 자세라서 다소 움츠러든 느낌입니다.

옷은 양어깨에 걸쳐 입고 있는데, 왼쪽 어깨 뒤로는 지그재그형의 옷자락을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앞가슴으로 자연스럽게 내려온 옷자락은 오른쪽 팔꿈치 뒤편에서 부챗살 모양과 같이 말려진 옷 주름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옷 주름의 표현은 모두 고려 후기 불상의 특징과 비슷하여 불상이 만들어진 시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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