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성풍사지 오층석탑 문화·유적

- 영암 성풍사지 오층석탑

영암군청에서 남쪽으로 약 1.2km 떨어져 있는 곳에 성풍사(聖風寺) 절터가 있습니다. 

이곳은 조곡(鳥谷)마을 바로 동쪽으로, 월출산 북쪽 끝자락에 해당합니다. 절터에는 석탑만 남아 있습니다. 탑은 성풍사지 오층석탑(聖風寺址 五層石塔)이라고 합니다. 탑 뒤쪽으로 울퉁불퉁한 월출산이 바라보입니다.

- 성풍사지 오층석탑

2층 지붕돌까지만 남은 탑이 일부 지대석이 사라져 상층기단 면석이 흐트러지는 등 무너질 위험에 처하자 1986년 8월에 영암군의 자체 보수 계획에 의해 해체·복원되었습니다.

이때 1층 몸돌에서 '통화이십칠년기유(統和二十七年己酉)'에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는 화강암제 탑지석과 뚜껑이 달린 청자사리호가 나왔습니다. '통화(統和)'는 중국 요나라 성종 때 쓰였던 연호(年號)로, 983년에서 1012년까지 쓰였습니다. 통화 27년은 고려 목종 12년(1009년)에 해당합니다.

- 성풍사지 오층석탑

기단부를 해체한 후 기초 공사를 위해 하부 구조를 정리하다가 '성풍대사(聖風大寺)'란 명문이 있는 기왓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로써 이곳 절 이름이 성풍사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절 이름에 큰 '대(大)' 자가 붙은 것을 보면 당시 절의 규모가 꽤 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복원 공사 도중에 인근 마을에서 3층 몸돌, 4층 몸돌과 지붕돌이 수습되어 복원 때 쓰였습니다. 없어진 부재와 상륜부는 새로 만들어 보완하였습니다.

- 기단부

기단부 모습입니다. 기단은 이층기단입니다. 지대석은 4개의 장대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 하층기단

하층기단 면석에 모서리기둥과 가운데기둥 대신에 2개의 창틀 모양이 얕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는 보통 잘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대갑석에는 윗면에 얕은 물매가 있고, 가운데에 각호형(角弧形)의 2단 받침이 있습니다.

- 상층기단

상층기단 면석에는 면마다 모서리기둥과 1개의 가운데기둥이 있습니다. 상대갑석 아랫면에 부연이 없습니다. 

- 상층기단

상대갑석 웟면에 얕은 물매가 있습니다. 

- 상대갑석

상대갑석 윗면 가운데에 각호각형의 3단 받침이 있습니다.

- 탑신부

탑신부는 각각의 몸돌과 지붕돌로 되어 있습니다.

몸돌은 면석마다 모서리기둥이 있습니다. 그런데 몸돌 크기가 3층부터 급격히 작아져 탑의 균형감이 덜합니다. 지붕돌은 얇은 편입니다. 지붕돌 아랫면의 층급받침은 1~3층에서는 4단이지만, 4~5층에서는 3단으로 줄었습니다. 낙수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에서 가벼운 반전이 있습니다. 

상륜부에 새로 만든 노반, 복발, 보주가 놓여 있습니다.

- 성풍사지 오층석탑

탑의 1층 몸돌에서 발견된 탑지석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菩薩戒弟子高麗國靈嵒縣戶長朴文英特爲邦家鼎盛朝野益安敬造立五層石塔安置聖風大寺永充供養也 統和二十七年己酉六月日記

위 내용에 의하면, 당시 영암현 호장(戶長) 박문영이 발원하여 오층석탑이 성풍사에 세워졌으며, 건립 동기는 호장 개인의 평안과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의 융성과 번영 그리고 조정과 백성들의 편안한 삶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탑을 세운 목적이 주로 국왕의 극락왕생이나 그들 왕공 귀족들의 안녕을 빌었던 신라 하대의 경향과는 달리 나라와 백성의 이익과 안녕을 위한 것임을 시사함으로써 고려 시대 호국불교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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