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월남사지 문화·유적

- 강진 월남사지

무위사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 월출산 남쪽 자락에 월남사지(月南寺址)가 있습니다. 절터에는 삼층석탑과 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가 있습니다.

월남사(月南寺)의 창건을 밝힐 수 있는 확실한 문헌은 전하지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고려 승 진각이 처음 창건했고, 이규보 비가 있다(高麗 僧眞覺初創 有李奎報碑)'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따르면 송광사(松廣寺) 제2세조인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 1178~1234)에 의해 창건되었고, 그 후 조선 시대에 들어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17세기 중반에 폐사된 것으로 보입니다.

- 진각국사비

진각국사비는 월남사지 입구 쪽에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진각국사의 부도는 이곳과는 멀리 떨어진 송광사의 산내암자인 광원암(廣遠庵)에 있습니다. 비는 부도가 세워지고 나서 15년이 지난 후에 세워졌습니다.

비는 위쪽이 깨어져 나갔고, 앞면에 진각국사의 행적이 적혀 있으나 마멸이 심해 다 읽어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이 비문을 찬한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과 그리고 <동문선(東文選)>에 실려 있습니다. 뒷면에 비를 세운 경위가 적혀 있어 고려 고종 37년(1250년)에 최우(崔瑀)와 그의 아들 최항(崔沆)의 각별한 관심에 따라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진각국사비

귀부는 네 발의 발톱 표현이 사실적이며, 머리와 목 등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습니다. 비좌 옆면에 구름무늬(雲文)와 함께 일월상문(日月象文)이 새겨져 있는데, 비좌에 일월상문이 새겨진 예는 진감국사비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비에 새겨진 찬(讚)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산은 기울어져도 이 비석은 옮기지 못하리라. (此山寧騫 此石不遷) 

오랜 시간이 지나 비의 글씨가 탈락하고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찬자(讚者)의 뜻대로 지금도 굳건히 제 장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 월남사지

지금 월남사지는 발굴조사 중입니다. 삼층석탑도 해체되어 복원 수리 중입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원래는 석탑 2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근 민가에서 석탑 지붕돌이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삼층석탑 외에 다른 석탑 하나가 더 있었던 듯합니다. 그런데 발견된 지붕돌이 백제계 석탑 양식인 삼층석탑과는 달리 신라계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같은 절터에 백제계와 신라계 석탑이 같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월남사지

월남사지를 찾기 전에 기대를 잔뜩 했습니다. 

하지만 탑은 해체되어 볼 수 없고, 비닐에 뒤덮인 어수선한 절터만 있습니다. 이곳 절터를 찾은 것은 삼층석탑 때문인데, 만나볼 수 없다니 무척 아쉽습니다. 이런 아쉬움을 절터 너머로 바라보이는 월출산으로 조금이나마 달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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