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영 생가, 창원향교... 문화·유적

- 김종영 생가

창원 소답초등학교에서 서쪽으로 약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한국 근대 조각가인 우성(又誠) 김종영(金鍾瑛, 1915~1982)의 생가가 있습니다.

지금의 건물은 김종영의 증조부인 모연(慕淵) 김영규(金永珪, 1857~1931)가 1926년에 지었습니다. 건물은 안채, 아래채, 대문채, 그리고 별채로 되어 있습니다. 가곡 '고향의 봄'에 나오는 '울긋불긋 꽃 대궐'이라는 노랫말이 바로 이 집을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영규는 조선 왕조가 끝나가던 1857년에 창원에서 독자로 태어났습니다. 1893년 초사로 사헌부 감찰에 임명된 후 대한제국 시기 중추원 의관, 함안군수, 창원부윤서리, 진남군수, 장례원 전사 등 두루 관직을 거쳤습니다. 그러나 조선 왕조가 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 창원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집안 일으키는 데 신경을 썼습니다. 그런 계기로 지금의 김종영 생가를 지었습니다.

- 김영규 송덕비

김종영 생가 앞에 김영규 송덕비가 있습니다. 

비는 원래 창원시 의창구 동정동 도로변에 있었으나, 도로 확장으로 2003년 8월에 지금 있는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비의 정면에 '정삼품전참판김공영규송덕비(正三品前參判金公永珪頌德碑)'라고 적혀 있습니다. 비의 측면에 '을축구월(乙丑九月)'이라고 적혀 있어 1925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사미루

사미루(四美樓)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대문으로, 별당의 대문채에 해당합니다. 

- 구문정

별당 이름은 구문정(求文亭)입니다. 지금은 살림집 노릇을 하고 있지만, 원래는 손님을 대접하고 모임을 열던 곳입니다. 

- 김영규 송덕비

사미루 앞에도 김영규 송덕비가 하나 더 있습니다.

- 김종영 소개 표시판

김종영 생가 맞은편 연립주택 벽면에 김종영 소개 표시판이 있습니다.

1974년 이후 주위에 상가와 중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김종영 생가 영역은 도시의 섬처럼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4년에 김종영 생가 영역을 통과하는 도로가 났습니다. 이때 여러 채의 건물이 헐렸고, 본채 영역과 사미루·별당이 있는 별채 영역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 창원향교 풍화루

김종영 생가로부터 서북쪽으로 450m쯤 떨어진 곳에 창원향교(昌原鄕校)가 있습니다.

창원향교는 고려 충렬왕 2년(1276년)에 처음 세워졌다고 전하지만, <창원군지(昌原郡誌)>에는 조선 초기에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향교는 부의 북쪽 1리 지점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초기에 세워진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 소답동에 세워졌으나 숙종 31년(1705년)에 당시 부사 신명식(申命式) 등이 발의하여 마산회원구 합성동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그곳 지세가 ‘숭무(崇武)의 땅이지 숭문(崇文)의 땅이 못 된다.'고 하여 영조 25년(1749년)에 당시 부사 이윤덕(李潤德) 등에 의해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겨졌습니다.

경내 뒤쪽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과 동·서무(東·西廡)가 있고, 그 앞쪽으로 학업의 공간인 명륜당과 유생들이 기거하던 동·서재(東·西齋), 그리고 풍화루(風化樓)가 있습니다.

- 비석들

풍화루 문이 굳게 닫혀 있어 향교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풍화루 앞에 '이윤덕이교불망비(李潤德移校不忘碑)'와 '임익창풍화루창건비(任益昌風化樓創建碑)' 등이 있습니다. 잠시 비석 앞을 서성이다 돌아섭니다.

덧글

  • Theseus 2019/03/06 19:59 # 삭제 답글

    글 잘 읽고 갑니다...창원향교 일부도 김영규의 부친과 당숙이 중건을 지원한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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