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선암사(2) 문화·유적

- 선암사 삼층석탑

선암사(仙巖寺)는 백제 성왕 7년(529년)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처음으로 개창하여 비로암(毘盧庵)이라 했다고 하나 그대로 믿기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신라 헌강왕 1년(875년)에 도선(道詵, 827~898)이 창건하여 선암사라고 하였다는 설이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고려 시대 박전지(朴全之)가 쓴 <영봉산용암사중창기(靈鳳山龍巖寺重創記)>에 지리산 성모천왕(聖母天王)이 "만일 세 개의 암사(巖寺)를 창건하면 삼한이 합하여 한 나라가 되고 전쟁이 저절로 종식될 것이다."라고 한 말을 따라 도선이 세 암자를 창건하였는데, 곧 선암(仙巖)·운암(雲巖)·용암(龍巖)이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절 서쪽에 높이가 10여 장(丈) 되는 면이 평평한 큰 돌이 있는데, 사람들은 옛 선인(仙人)이 바둑을 두던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선암(仙巖)이라는 절 이름이 생겼다고 합니다.

- 선암사 삼층석탑

대웅전 앞마당 동쪽과 서쪽에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탑은 이층기단의 삼층석탑입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전형적인 신라 석탑 모습입니다. 조성 시기는 9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대웅전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집입니다. 순조 25년(1825년)에 중창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석가여래좌상

대웅전 내에 석가여래좌상이 있습니다. 조선 후기 불상입니다.

석가여래좌상 뒤에 걸린 탱화는 영산회상도입니다. 화면 전체에 걸쳐 녹색과 붉은색이 대비되어 강렬한 인상을 줍니다.

- 대웅전 내부

대웅전 내부 모습입니다.

- 불연

석가여래좌상 뒤편에 불연(佛輦) 2채가 있습니다.

불교 의식 가운데 시련의식(侍輦儀式)이 있습니다. 이 의식은 가마를 문밖까지 메고 나가 신앙의 대상인 불·보살이나 재를 받을 대상인 영가 등을 가마에 모시고 여러 가지 위의를 갖추어 법회 장소까지 행렬을 지어 가는 의식입니다. 이때 불·보살이나 영가 등을 의식 도량에 모셔와 돌려보내는 데 필요한 가마가 불연입니다.

- 응진전

응진전 모습입니다.

응진전은 경내에서 가장 뒤쪽에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는 길도 반듯하지 않고, 구부러져 있어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다 응진전 주변에 담이 둘러쳐져 있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응진전은 주변과 잘 통하지 않은 고립된 곳에 있습니다.

- 삼존불

응진전에 삼존불이 있습니다. 석가여래좌상을 본존으로 하여 양옆에 제화갈라보살좌상과 미륵보살좌상이 있습니다. 모두 조선 후기 불상입니다.

- 원통전

원통전은 선암사 경내에서 가장 개성적인 건물입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건물 앞쪽으로 기둥 2개를 내어 건물 평면이 T자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조선 현종 1년(1660년)에 경준, 경잠, 문정대사가 처음 지었고, 숙종 24년(1698년)에 호암대사가 고쳐 지었습니다. 지금의 건물은 순조 24년(1824년)에 다시 고쳐 지은 것입니다.

- 선암매

선암사는 매화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이곳 매화를 선암매(仙巖梅)라 합니다.

선암매는 원통전과 각황전을 따라 운수암(雲水庵)으로 오르는 담장길에 50주 정도가 있습니다. 특히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와 각황전 담장길의 홍매화가 유명합니다. 매화가 필 때면 매화를 보기 위해 선암사를 찾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문헌에 전하는 기록이 없어 수령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절에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 년 전에 천불전 앞의 와송과 함께 심어졌다고 전하고 있어 선암사의 역사와 함께 긴 세월을 지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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