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호수종택 문화·유적

- 영천 호수종택

영천(永川)은 보수적인 영남 지역의 문화를 비교적 잘 간직한 곳입니다. 

그런 연유로 조선 시대 한옥이 여러 곳에 남아 있습니다. 민가로는 먼저 매산종택(梅山宗宅)이 떠오르지만, 호수종택(湖叟宗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 호수종택

호수종택은 영천시청으로부터 북서쪽으로 2.7km쯤 떨어진 대전동(大田洞)에 있습니다.

이곳 안내판에 의하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운 의병장 호수(湖垂) 정세아(鄭世雅)의 장손(長孫)인 정호례(鄭好禮, 1604~1672)가 광해군 5년(1613년)에 세웠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613년이면 정호례 나이가 10세일 때인데, 이런 어린 나이에 건물을 세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보다는 인조 21년(1643년)에 세웠다는 이야기가 더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정호례는 영천에서 정수번(鄭守藩)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정의번(鄭宜藩)의 양자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1636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으며, 그해 겨울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인조를 모시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성을 굳게 지켰습니다. 전란 후 모친상을 당하여 삼년상을 치렀고, 그 후 수차례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대부분 병을 핑계로 출사하지 않고 고향에 머물렀습니다. 1660년에 해남현감(海南縣監)으로 부임하였으나 1년 후 사직하였습니다. 그가 해남현감을 마치고 돌아올 때 가지고 온 짐이 등짐 하나와 치자 화분 하나였기 때문에 고을 백성들이 청덕비(淸德碑)를 세워주었습니다.

- 호수종택

호수종택은 얼핏 보면 매산종택와 겉모습이 비슷합니다. 마치 성벽처럼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는 앞면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매산종택과는 사뭇 다릅니다.

매산종택은 '口'자형 가옥 구조이지만, 호수종택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工'자형 가옥구조입니다. '工'자형 가옥구조가 드문 이유는 풍수지리적으로 한옥의 평면 형태를 주로 길상형인 구(口)자형·월(月)자형·일(一)자형·용(用)자형 등을 하였고, 불길한 의미가 있는 시(尸)자형과 공(工)자형 등은 되도록 피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호수종택이 '工'자형 가옥 구조를 택한 것은 산골짜기에 있는 매산종택과는 달리 비교적 너른 평지에 있는 지역적 차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 호수종택

건물 대문 위에 '호수종택(湖叟宗宅)'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 호수종택 옆쪽

건물 정면에서 옆으로 돌아가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마주 보이는 방에 하인이 살았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 옆으로 부엌과 통하는 문이 있습니다. 

- 호수종택 옆쪽

그리고 부엌과 붙은 안방 방문도 있습니다.

- 호수종택 옆쪽

하인 방으로 보이는 방과 마주 보는 곳에도 방이 하나 있습니다. 이 방을 누가 썼을지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 대문

건물 안으로 들어와서 안채에서 바라본 대문 모습입니다. 대문 왼쪽에 곳간이 있고, 오른쪽으로 사랑채와 이어집니다. 

- 부엌

곳간 옆에 부엌이 있습니다. 부엌 창살 위로 안방에 딸린 다락이 있습니다. 다락은 생각보다는 꽤 넓으며, 살림살이에 필요한 여러 물건을 보관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사랑채

안채에서 바라본 사랑채 모습입니다.

사랑채에는 판문 두 짝이 있는데, 이 판문을 열면 바로 사랑채 마루입니다. 그런데 판문은 모두 안채 쪽에서 걸어 잠글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안채 쪽에서는 필요에 따라 사랑채 마루로 판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으나, 사랑채 마루 쪽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 평소에는 판문을 걸어 잠가 안채를 외부와 격리하고, 사랑채에 손님이 왔을 때 음식 등을 나르기 위해 열었을 것입니다.

- 안채

안채는 한옥에서 가장 은밀한 곳에 있습니다. 

이곳 안채는 사랑채보다 한 단 더 높게 자리 잡았습니다. 사랑채보다는 장식적인 화려함에는 떨어지지만, 가옥 구조상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는 겉모습을 좀 더 중시하는 사랑채에 비해 내실을 중요시하는 안채의 역할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안채

안채에서는 대청마루 오른쪽 방이 가장 넓습니다. 부엌과는 작은 방문으로 통하는 이 방은 안채 주인이 썼을 것으로 보입니다. 

- 안채

안채에 대청마루 왼쪽에 방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방은 집안 살림을 며느리에게 물려준 시어머니가 썼을 것으로 보입니다.

- 안채

옆에서 바라본 안채 모습입니다.

- 안채 앞마당

안채 앞마당은 그다지 넓은 편이 아닙니다. 3면이 집으로 막혀 있으나, 한 면이 터져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보다는 덜 답답합니다.

- 향나무

사당으로 가는 길에 오래된 향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이 나무는 수령이 40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호수 정세아가 임진왜란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전사한 동지들의 영혼을 위로하려고 심었다고 합니다.

- 사당

사당은 호수종택의 담장 밖 뒤쪽 높은 곳에 있습니다. 

사당은 한옥의 배치에서 가장 뒤쪽 높은 곳에 두는데, 호수종택에서도 그 예에 따랐습니다. 하지만 담장 밖에 따로 둔 점이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 있습니다.

- 사당

사당 모습입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입니다. 호수 정세아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 배롱나무

사당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앞에 배롱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여름에 붉은 꽃이 활짝 피면 지금보다 아름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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