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양계정사

- 영천 양계정사

영천 북쪽에 높이 솟아 있는 화산(華山)의 한 줄기가 남으로 흘러들어 대전동(大田洞)에 와서 끝납니다. 이 끝자락 언덕에 양계정사(暘溪精舍)가 있습니다.

양계(暘溪)는 '해 돋는 시내'라는 뜻입니다. 그 뜻에 맞게 양계정사는 고현천(古賢川)을 앞에 두고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앉았습니다. '양계'는 정호인(鄭好仁, 1597~1655)의 호이기도 하며, 조선 영조 46년(1770년)에 정호인의 뜻을 기려 후손들이 그가 강학하였던 자리에 지은 것이 바로 양계정사입니다.

정호인은 광해군 10년(1618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인조 5년(1627년)에 병과로 급제하였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향리에서 의병을 일으켜 관군을 도왔습니다. 1637년 이후 1654년까지 여러 고을의 수령으로 임명되었으나, 때로는 부임하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벼슬은 진주목사에 이르렀습니다.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는 간단한 고리짝과 서책 몇 권이 행장의 전부였을 정도로 청빈하였습니다. 저서로는 그의 후손들이 간행한 <양계문집(暘溪文集)>이 있습니다.

- 돌계단

돌계단을 오르면 있는 언덕바지에 양계정사가 있습니다.

- 배치도

안내판에 있는 양계정사의 배치도입니다.

- 양계정사

왼쪽에 안채가, 오른쪽에 양계정사가 있습니다. 

- 양계정사

양계정사 옆모습입니다.

양계정사는 원래 가운데 2칸 대청과 양옆에 온돌방을 둔 'ㅡ'자형 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왼쪽 온돌방 뒤쪽으로 한 칸의 방과 중문간채가 증축되어 'L'자형이 되었습니다.

- 양계정사 옆모습

뒤뜰로 들어가는 문과 그리고 마구간과 중문간채입니다.

- 양계정사 뒷모습

양계정사 뒤뜰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 양계정사 뒷모습

양계정사 뒷모습입니다.

- 양계정사

양계정사 앞모습입니다.

- 현판

앞쪽 정면에 '양계정사(暘溪精舍)'라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 향나무

양계정사 앞쪽에 향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그 너머로 고현천이 예전과 변함없이 흐릅니다. 

하지만 28번 국도가 양계정사 뒤쪽 능선을 가로질러 바싹 붙어서 지나갑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차 소리로 조금 소란스럽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처럼 주위가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 양계정사

비 오는 날 바라보는 쪽마루가 쓸쓸하면서도 정겹습니다.

- 안채

안채는 부엌, 방, 마루방이 일렬로 배치된 남쪽 지방의 민가 양식입니다. 그런데 마루의 앞쪽을 판벽으로 막고 쌍여닫이 문을 달아 마루방으로 꾸민 것이 특이합니다.

- 양계정사

양계정사를 내려와 바라본 양계정사 정면 모습입니다.

- 양계정사

집과 사람은 서로 어떤 관계일까요? 

집은 사람이 편안하게 지낼 거처가 되어주고, 사람은 그런 집을 끊임없이 돌봅니다. 그래서 사람이 떠난 집은 생기를 잃고 쉽게 퇴락합니다. 양계정사도 지금 사람이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기는 잃었지만, 관리되어 퇴락함을 면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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