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서악동 삼층석탑 문화·유적

-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慶州西岳洞三層石塔)은 경주 서악서원(四岳書院)의 서쪽 속칭 샛골(間谷)에 있습니다. 탑이 있는 좌우 산등선에 전(傳) 진지·문성왕릉을 비롯한 왕릉 4기와 신라 시대 고분군이 있습니다. 

- 서악동 삼층석탑

이곳 절터는 일찍이 전칭 왕릉군과 관련된 원찰(願刹)로 주목받았습니다. 

조선 영조 6년(1730년)에 경주김씨 일족에 의해 영경사(永敬寺)로 추정된 후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무열왕의 장지가 영경사 북쪽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무열왕릉은 이곳 남동쪽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곳이 영경사터일 가능성은 없습니다.

- 도봉서당

탑 바로 남쪽 아래에 1915년에 건립된 도봉서당(桃峯書堂)이 있습니다. 

도봉서당은 이곳 절터 위에 세워졌는데, 조선 성종대의 학자였던 불권헌(不倦軒) 황정(黃玎, 1426~1497)의 후손들이 그의 학덕과 효행을 기리기 위해 인종 원년(1545년)에 그의 묘 아래에 재실인 추보재(追報齋)를 세운 것이 효시였습니다.

- 서악동 삼층석탑

탑은 큼직한 방형(方形) 기단 위에 3층 탑신부가 있습니다. 기단부와 탑신부는 온전하지만, 상륜부는 노반을 포함하여 모두 오래전에 없어졌습니다. 

탑신부는 기단부에 비해서 왜소합니다. 더구나 몸돌보다 지붕돌이 넓고 두터워서 더 왜소하게 느껴집니다. 지붕돌 낙수면은 전탑처럼 층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남산동 삼층석탑 동탑(왼쪽)과 남산 용장계 지곡 제3사지 삼층석탑(오른쪽)

이와 같은 형식의 탑은 경주지역에서는 흔하지 않으며, 9세기에 유행하였습니다. 남산동 삼층석탑 동탑과 남산 용장계 지곡 제3사지 삼층석탑이 같은 형식의 탑입니다.

- 기단부

기단부는 지대석 위에 아무런 장식도 없이 있습니다. 네모난 돌 4매를 '전(田)'자 모양으로 2중으로 쌓았습니다. 각 돌의 크기를 조금씩 다르게 하여 상하 간 부재 이음 위치를 서로 어긋나게 결구하였습니다.

- 기단부 실측도

기단 윗면은 편평하며, 가운데에 별석으로 된 몸돌 받침을 고정하는 홈이 '요(凹)'자 모양으로 움푹하게 파여 있습니다.

몸돌 받침은 윗면 가운데에 네모반듯한 사리공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랫부분이 '철(凸)'자를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볼록하게 튀어나도록 다듬어져 있어 기단 윗면 가운데에 있는 홈에 꿰맞출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사리공이 있는 별석의 이완 등 변형을 막기 위한 장치로 보입니다.

- 탑신부

몸돌은 모서리기둥도 새기지 않은 네모난 돌입니다. 지붕돌은 전탑처럼 낙수면이 층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1층 몸돌

1층 몸돌 남쪽 면에 문비 장식이 있습니다. 

문비 장식에는 양쪽 문짝에 고리를 달았던 작은 구멍이 상하로 약간 기울어지게 뚫려 있습니다. 문비 장식 좌우에 인왕상이 있습니다.  

- 서악동 삼층석탑

탑 주변에 작약꽃이 만발했습니다.

- 서악동 삼층석탑

활짝 핀 작약꽃 덕분에 요즈음 이곳 탑을 찾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길지 않을 것입니다. 머잖아 작약꽃이 시들어 떨어지면 가을에 구절초꽃이 필 때까지 다시 이전처럼 조용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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