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천관사지 석탑 문화·유적

- 경주 천관사지

경주 천관사지(天官寺址)는 오릉(五陵)과 도당산(都堂山) 사이에 있습니다. 도당산은 남산(南山)의 북쪽 끝에 있는데, 산이 서쪽으로 점차 낮아져 평지를 이룬 들에 절터가 있습니다.

천관사(天官寺)는 김유신(金庾信)과 천관녀(天官女)에 얽힌 창건 설화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창건 설화는 역사서에 수록된 것이 아니라 고려 시대 문인인 이인로(李仁老, 1152~1220)가 편찬한 시화집인 <파한집(破閑集)>에 수록된 것입니다.

- 천관사지 석탑

역사서에 기록된 천관사에 관한 것은 <삼국유사>에 있습니다. '기이편' 원성대왕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이찬 김주원(金周元)이 재상으로 있을 때 나중에 왕이 된 김경신(金敬信)은 각간으로 그의 차석 자리에 있었다. 왕이 꿈에 복두를 벗고 흰 갓을 쓰고 손에 12현금을 잡고 천관사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꿈을 깨어 사람을 시켜 점을 쳤더니 "복두를 벗는 것은 관직을 잃을 징조요, 가야금을 잡은 것은 칼을 쓸 조짐이요, 우물에 들어간 것은 옥에 들어갈 징조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매우 걱정하여 문을 걸어 잠그고 외출하지 않았다. 

이때 아찬 여삼이 와서 뵙기를 청했으나 왕은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아찬이 다시 청하여 뵙기를 원하므로 왕이 이를 승낙하니 아찬은 "공께서 지금 꺼리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왕이 꿈을 점쳤던 이야기를 자세히 말하자 아찬이 일어나서 절을 하고 말하기를 "이 꿈은 매우 길한 꿈입니다. 공께서 만약 왕위에 올라가도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공을 위해 꿈을 풀어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곧 좌우 사람들을 물리고서 해몽을 청하니 그가 말하기를 "복두를 벗는 것은 윗자리에 사람이 없다는 것이요, 흰 갓을 쓴 것은 면류관을 쓸 조짐이요, 12현금을 든 것은 12대손이 왕위를 이어받을 징조요, 천관사 우물에 들어간 것은 궁궐에 들어갈 상서로운 징조입니다."라고 하였다.

- 천관사지 석탑재(2010년 9월 19일)

절은 고려 시대까지 있었으나, 그 후 폐사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9년 전쯤 천관사지를 찾았을 때 석탑 상대갑석과 깨어진 1층 몸돌 등이 풀숲 속에 있었습니다.

오가와 케이키치(小川敬吉, 1882~1950)는 1916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회 일원으로 우리나라에 건너와 1944년 귀국할 때까지 많은 유적을 조사했습니다. 그가 1919년에 천관사지 부근을 지나가다가 사람들이 석탑 몸돌을 깨트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일단 이들을 저지하고 이장과 경찰관에게 유적의 보호를 의뢰하였고, 석탑의 피해 정도를 파악했습니다. 그 후 천관사지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1923년 6월에서 7월 사이에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오가와가 조사했던 천관사지 관련 자료로 남아 있는 것은 당시 현황을 보여주는 2컷의 사진과 절터에서 출토된 기와 탁본, 석조유물 배치도 및 실측도, 탑재 복원도 등 총 30장의 화상 자료입니다. 이 가운데 석탑 자료로 남아 있는 부분이 눈길을 끕니다. 기단부 부재와 몸돌, 지붕돌의 잔편(殘片)으로 보아, 탑은 사각기단을 갖춘 팔각석탑으로, 지붕돌 아랫부분의 받침은 일반적인 층급형이 아닌 3단 연화문으로 추정되었습니다.

- 연화문 팔각 지붕돌

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지붕돌입니다. 이 지붕돌은 형태가 매우 특이합니다. 지붕돌이 팔각이고, 지붕돌 아랫면에 3단 연화문이 있습니다.

- 조선고적도보 사진

이 지붕돌을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조선고적도보>에서 볼 수 있습니다. 경주읍내 석등 하대석과 간주석 사진이 그것인데, 석등 하대석과 간주석 너머에 이 지붕돌이 보입니다.

- 조선고적도보 사진

보다 자세한 사진입니다. <조선고적도보>에는 경주읍내 석등 지붕돌로 적혀 있습니다.

- 경주읍성 석등

그래서 경주읍성 석등의 지붕돌로 이 지붕돌이 거론되었습니다.

- 통도사 연화문 석탑 지붕돌

그런데... 이 지붕돌을 경주읍성 석등 지붕돌로 보기에는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이 지붕돌은 석등 지붕돌로는 너무 무겁고, 석등 지붕돌 아랫면에 이와 같은 연화문이 새겨진 예가 없습니다. 하지만 석탑에서는 연화문 지붕돌이 드물지만 있습니다. 통도사 연화문 석탑 지붕돌이 그 예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이 지붕돌은 석탑 지붕돌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그렇다면 천관사지 석탑 지붕돌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경주박물관 연화문 팔각 지붕돌(상)과 오가와 탑재 복원도(하)

그러나 이것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 이 지붕돌의 연화문과 오가와 사진 속 지붕돌 잔편의 연화문이 모양과 볼륨감에 있어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이 지붕돌이 천관사지 석탑 지붕돌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습니다.

- 천관사지 석탑

이런 이유로 천관사지 석탑은 복원되다가 지금은 멈춰 있습니다.

- 기단부

기단부는 이층기단으로, 일견 평범합니다.

- 기단부

원래 부재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면석 부분을 보면, 면석마다 모서리기둥과 2개의 가운데기둥이 있습니다. 그 외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습니다.

- 천관사지 출토 기단 면석

경주박물관에 천관사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석탑 기단 면석이 하나 있습니다. 면석에는 팔부신중상 중 새의 부리를 가지고 있는 가루라상이 뛰어난 솜씨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복원된 천관사지 석탑 기단 면석에는 팔부신중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단 면석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탑이 복원된 모습대로라면 천관사에 또 다른 석탑이 있었다는 것이 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 기단 면석은 다른 절터 것이라고밖에 해석되지 않습니다.

- 기단부

탑에서 상대갑석 윗면에 있는 1층 몸돌 받침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 1층 몸돌 받침

좀 더 자세히 볼까요? 다른 석탑과는 달리 8각형입니다. 이것은 1층 몸돌이 8각형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 1층 몸돌 받침과 1층 몸돌

일부이지만 남아 있는 1층 몸돌을 보면, 1층 몸돌이 8각형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천관사지 석탑

천관사지 석탑은 지붕돌을 두고 논란에 빠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주 특별한 탑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논란이 있는 부분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검증을 거쳐 하루빨리 결론이 났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실제 모습에 가까운 탑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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