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이조리 개무덤 문화·유적

- 이조리 개무덤

경주에는 개무덤이라고 부르는 고분(古墳)들이 있습니다.

개무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경주 용강동(龍江洞)에 있는 용강동 고분입니다. 이 무덤은 1986년의 발굴 조사 결과 왕족이나 막강한 권력을 소유했던 귀족의 무덤으로 밝혀졌습니다. 사람들은 개무덤이라고 불렀지만, 개의 무덤은 아니었습니다.

경주 내남면(內南面) 이조리(伊助里)에도 개무덤이라 부르는 고분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개무덤도 개의 무덤은 아닐 것입니다. 개무덤은 임진왜란 당시 큰 공을 세우고 병자호란 때 순절한 정무공(貞武公) 최진립(崔震立, 1568~1636)을 기린 비각 바로 뒤쪽에 있습니다. 개무덤 위로 나무들이 자라 숲을 이루고 있어, 얼핏 보면 무덤이 아니라 작은 동산처럼 보입니다.

- 이조리 개무덤

지금 이 일대를 이조리(伊助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개무덤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개무덤이란 이름은 이곳이 미역내, 별내, 박달천의 세 거랑(내의 방언)이 만나는 곳으로, 거랑이 모인다고 해서 '갯모듬'(浦會)이라고 하던 것이 개무덤이 되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실제로 이 마을을 '포회'(浦會)라고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개무덤이란 지명이 이조(伊助)가 된 것은 예전에 이곳에 윤 씨네들이 10여 호 살았는데 이들이 마을을 많이 도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300여 년 전의 문헌에도 이조(伊助)라는 마을 이름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오래전부터 이곳을 이조라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이조리 개무덤

이조리 개무덤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합니다.

옛날 어느 여인이 남편 최 씨를 일찍 사별하고 남매를 키우다가 죽었습니다. 염라대왕은 이 여인을 아들 집 개로 환생 시켜 주었습니다. 개가 자라자 아들 최 씨가 개를 잡아먹으려고 하자 이를 눈치챈 개가 달아나 버렸습니다. 최 씨는 개를 찾아다니다가 한 스님을 만났는데, 개는 어머니가 환생한 것이며 평생을 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다가 구경 한 번 못하고 죽었으니 구경이나 잘 시켜드리라고 하며 개가 누나 집에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누나 집에서 개를 찾은 최 씨는 개를 업고 팔도를 두루 돌며 구경시켜주고 집에 돌아오는데, 이곳에 이르자 개가 발로 땅을 파더니 죽어버렸습니다. 최 씨는 슬피 울며 개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그 후 최 씨는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직한 개의 무덤이라든지, 신라 진성여왕의 간부(姦夫)인 각간 김위홍의 무덤으로 질녀인 진성여왕과 놀아난 그의 행실을 빗대어 그렇게 불렀다는 이야기도 같이 전해옵니다.

- 이조리 개무덤

개무덤 꼭대기에 화강암으로 만든 돌기둥 하나가 서 있습니다.

- 돌기둥

이 돌기둥에는 어떤 이야기가 전할까요?

예전에 개무덤 자리에 마치 돛대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바위를 마을에 길할 징조라 여겨 매우 신령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을은 해마다 풍년이 들고 질병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멀리 있는 강동의 양동마을에서는 그곳 못에 이 바위가 비치기만 하면 흉년이 들고 괴질이 나돌았습니다. 그래서 그곳 마을 사람들이 의논하여 이곳에 몰래 들어와 이 바위를 깨뜨렸습니다. 이에 이곳 이조리 사람들은 애통해하며 이 바위 조각들을 모아 흙으로 덮어 무덤을 만들고, 무덤 위에 돛대 바위 대신에 길게 생긴 돌기둥을 하나를 세웠다고 합니다. 

- 돌기둥

그런데 돌기둥에 '천작도'(天作棹)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하늘이 만든 노'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돌기둥에 왜 이 글자를 새긴 걸까요?

- 돌기둥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무덤 위에 돌기둥만 덩그러니 세워놓으니 예전의 돛대 바위보다 너무 볼품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천작도(天作棹)라는 멋진 글자를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 이조리 개무덤

예로부터 이곳은 풍수지리로 볼 때 배가 나아가는 형상(行舟形局)의 명당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마을은 배가 침몰하는 것을 막으려고 우물을 파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개무덤이 있는 곳은 뱃머리에 해당할 터이고, 이곳에 배를 젓는 데 필요한 노를 천작도(天作棹)라 새긴 돌기둥으로 대신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명당이라는 이곳에 얼마 전 큰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경주 지진의 진원지가 바로 이곳입니다. 옛사람들이 땅 위의 일은 풍수지리로 설명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땅속 일까지야 어찌 알 수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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