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호원사지 문화·유적

- 경주 호원사지

경주 호원사지(虎願寺址)는 황성공원(皇城公園) 내에 있습니다. 

이곳은 신라왕경의 북쪽 경계인 북천(北川)의 바로 위쪽입니다. 황성공원은 신라 화랑들의 훈련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경주실내체육관, 시립도서관, 충혼탑, 국궁장 등이 들어서 있습니다.

- 호원사지

<삼국유사(三國遺事)> 김현감호조(金現感虎條)에 의하면, 호원사는 원성왕 때 김현(金現)이 호랑이의 은덕을 입어 벼슬길에 오르자 그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세웠다고 합니다. 따라서 절은 원성왕 재위 기간인 785~798년 사이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문헌 기록에서는 호원사의 내력과 폐사 시기 등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동경잡기(東京雜記)>에 고분조(古蹟條)에서 다루어지고 있어, 조선 시대에는 이미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호원사지

호원사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합니다.

신라 원성왕 때 흥륜사에서 탑돌이를 하다 밤이 깊어지자 모두 돌아갔는데, 화랑 김현과 한 처녀만은 계속 돌고 있었다. 달빛 아래 수줍은 미소에 살결이 뽀얀 처녀와 김현은 서로 사랑의 불꽃을 교환하다 으슥한 곳에 가서 정(情)을 통했다. 김현은 처녀가 거절해도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처녀의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아니함만 못하다. 너희 오빠가 해칠까 두렵다."면서 김현을 장롱 속에 숨겨주었다.

잠시 후 호랑이 세 마리가 들어와 으르렁거리면서 "어디서 이런 맛있는 냄새가 나지? 요기나 해야겠다."고 말했다. 어머니와 처녀는 동시에 "코가 이상하다."며 김현의 편을 들었다. 처녀는 호랑이였다. 이때 하늘에서 "너희는 나쁜 짓을 저질러서 한 놈이 죽어야 죄를 면할 수 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벌벌 떠는 오빠 호랑이 앞에 호랑이 처녀는 "오빠, 다시는 나쁜 짓 하지 마세요. 대신 내가 죽겠어요."라고 말했다. 

못난 오빠 호랑이들이 슬그머니 사라지자 호랑이 처녀는 차분하게 김현에게 고백하였다. "비록 낭군님과 같은 부류는 아니지만, 하룻밤 소중한 인연을 맺었으니 낭군님의 칼에 죽어 은혜를 갚겠습니다. 제가 내일 거리에 나가 사람을 해치면 대왕(원성왕)은 반드시 높은 벼슬을 걸고 저를 잡으려 할 것입니다. 그때 낭군님은 겁내지 마시고 잡으려고 오시면, 저는 성 북쪽 숲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김현은 "사람이 다른 부류와 사귀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인연은 하늘이 준 운명인데, 내 어찌 당신의 죽음을 팔아 속세의 벼슬을 바라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호랑이 처녀의 말대로 다음날 호랑이가 사람을 해치고 다니자 원성왕은 2급의 벼슬을 걸었다. 김현이 칼을 차고 숲으로 들어가자 처녀로 변신한 호랑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간밤에 낭군님과 나눈 말을 잊지 마세요. 제 발톱에 다친 사람은 흥륜사의 간장을 바르고 그 절의 나팔 소리를 들으면 곧 나을 것입니다. 빨리 죽여주세요." 처녀가 김현이 찬 칼을 뽑아 스스로 찌르자 호랑이로 변해서 죽었다.

호랑이 처녀와의 인연 때문에 출세한 김현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호랑이 처녀의 원을 달래주는 호원사를 지었다.

- 호원사지

절터는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바 있고, <신라 고와의 연구(新羅古瓦の硏究)>에 '양 탑지(塔址)가 있으며, 석탑재와 초석이 산재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977년의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도 석탑재와 초석의 존재가 보고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철거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민가가 있어 묘목장과 경작지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당시 석탑재, 추정 기단 석재, 초석 등의 석조물이 민가의 기단, 화단의 경계석, 장독대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 석탑재

절터 한쪽 철제 펜스 안에 지붕돌이 놓여 있습니다. 2매 모두 뒤집힌 상태로, 아랫면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 석탑재

큰 지붕돌은 172×172㎝이고, 작은 지붕돌은 162×162㎝이며, 층급받침이 5단입니다. 처마, 모서리 부분 등의 파손이 심합니다.

- 석탑재

큰 지붕돌의 노출면 중앙에 크기 31×31㎝, 깊이 15㎝의 방형 사리공이 있습니다.

- 석재

지붕돌과 함께 있는 이 석재는 윗면이 1단으로 치석 되어 있습니다.

- 호원사지

절터에는 최근에 심은 것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절터는 이전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이미 훼손되었고, 민가가 철거된 지금은 더더욱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 호원사지

국궁장인 호림정으로 가는 길에서 절터를 바라봅니다.

호원사지(虎願寺址)는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절터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변했습니다. 신라 전성기 경주에는 하늘의 별만큼 많은 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많았던 절들이 대부분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호원사(虎願寺)는 이름 석 자와 절에 얽힌 애절한 이야기는 남겼습니다. 그러니 이것으로 절터의 허전함을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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