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칠탄서원 문화·유적

- 칠탄서원으로 가는 길 입구

밀양 칠탄산(七灘山) 아래 단장천(丹場川) 강가에 있는 칠탄서원(七灘書院)을 찾아갑니다.

칠탄서원을 찾아가는 방법은 활성동 활성2교 쪽에서 갈 수도 있고, 미촌리 구미 마을 쪽에서 갈 수도 있습니다. 2가지 가운데 활성2교 쪽에서 가는 것이 가깝고, 길도 좋습니다.

활성2교 쪽에서 가는 길입니다. 위 사진에서 자동차가 서 있는 길로 들어가면 바로 칠탄서원으로 가는 좁은 산길이 있습니다.

- 칠탄서원으로 가는 산길

길은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좁고, 강 쪽으로는 계속 낭떠러지입니다. 하지만 호젓하기 이를 데 없는 길입니다.

- 낙엽이 쌓인 산길

사람의 왕래가 드문 산길에는 낙엽만이 수북이 쌓여 있습니다.

- 칠탄서원

이렇게 몇십 분쯤 가면, 강가 절벽 위에 칠탄서원이 있습니다.

- 칠탄서원 뒷문 입구

길은 칠탄서원 뒷문으로 이어집니다. 

- 벽립재

뒷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벽립재(壁立齋)가 있습니다.

- 읍청당

그리고 그 안쪽에 강당에 해당하는 읍청당(挹淸堂)이 있습니다. 읍청당 현판 글씨는 철종 때 의주부윤(義州府尹)을 지낸 권응기(權應夔)가 썼습니다.

- 읍청당 기둥

기둥 공포에 화려한 장식을 해 두었습니다.

- 칠탄정

읍천당 맞은편에 칠탄정(七灘亭)이 있습니다.

- 현판

'칠탄정'이라 쓴 현판입니다.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蔡濟恭)이 썼습니다. 지금의 현판은 모사품이며, 원래 현판은 밀양시립박물관에 있습니다.

- 운강루

벽립재와 마주 보는 쪽에 운강루(雲江樓)가 있습니다.

- 운강루

운강루는 계자난간을 두른 누각 형식의 건물입니다. 건물 한쪽에 1칸 방이 있습니다. 누각 아래에는 출입문이 있습니다.

- 운강루

누각 안에 '운강루'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 운강루

누각 내부 모습입니다.

- 누각에서 바라본 전경

누각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막힘이 없이 시원스럽습니다.

- 바깥쪽에서 바라본 운강루

바깥쪽에서 바라본 운강루입니다. 

누각 아래에 출입문이 있는데, 서원의 정문 역할을 합니다. 미촌리 구미 마을 쪽에서 찾아가면 이 정문 쪽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 은행나무

서원 뒤쪽을 오르면서 옆을 바라보면 담장 밖에 지난 세월을 말해주듯 큰 은행나무가 서 있습니다.

- 유허비각

서원 뒤쪽에는 유허비각(遺墟碑閣)이 있습니다.

- 뒤쪽에서 바라본 칠탄서원

뒤쪽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ㅁ'자형 건물 배치를 한 칠탄서원 앞으로 단장천이 흐릅니다.

칠탄서원은 손기양(孫起陽, 1559~1617)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입니다. 그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병(鄕兵)을 모아 왜적에 맞섰고, 광해군(光海君)이 등극한 이후로 정치가 문란해지자 광해군 4년(1612년)에 창원도호부사(昌原都護府使)를 스스로 사직하고 귀향하였습니다. 그 후 조정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낚시와 독서, 강학하며 은거해 지내다가 59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호는 오한(聱漢)입니다. 뜻은 '못 들은 체하는 자'란 뜻입니다. 스스로 낙향하여 조정의 부름에 따르지 않고 낚시하며 은둔생활을 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칠탄서원에서 '칠탄'(七灘)은 칠리탄(七里灘)을 줄인 말입니다. 칠리탄은 중국 후한(後漢) 때 엄자릉(嚴子陵), 즉 엄광(嚴光)의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엄자릉과 한때 동문수학했던 친구 유수(劉秀)가 후한(後漢)의 황제(光武帝)가 되어 그에게 간의대부(諫議大夫) 벼슬을 내려도 마다하고, 절강성(浙江省) 동려현(桐廬縣) 부춘산(富春山) 아래 동강(桐江) 일원의 칠리탄에서 낚시하며 은둔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손기양의 삶과 중국 엄자릉의 고사(古事)를 떠올려보면, 왜 칠탄서원이라 하였는지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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